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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롬반 발자취2019-01-16T17:06:38+00:00

한국진출부터 광복까지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1933년 6월 교황청으로부터 전라남도에서 일할 것을 제의받고
1933년 10월 29일 최초로 10명의 회원을 한국에 파견하였습니다.

한국에 파견된 최초의 회원들은 대구교구 신학교에서 한국말 공부를 마치고 전라남도로 파견되었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6명의 한국인 신부가 3000 여명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사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골롬반회는 목포, 노안, 순천, 광주, 제주, 서귀포 등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다른 지역에서도 사목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1938년에는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그해 11월 2명의 회원이 춘천에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강원도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강원도에는 한국인 신부 11명이 9,000여명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전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939년 6명의 골롬반 신부가 합류하여 춘천, 원주, 홍천, 이천, 평강 등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41년 12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합세하면서 신부들을 모두 체포하여 골롬반 회원들 가운데
미국, 호주, 뉴질랜드 출신의 7명의 신부는 본국으로 송환시켰고, 아일랜드 신부들은 가택연금 시켰습니다.
제주도에서 사목하던 3명의 골롬반 회원들은 첩보활동 및 불온사상 소지자라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후 45년까지 사실상 선교 사업이 중단되다시피 하였습니다,

광복 직후

1945년 해방이 된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되었고 선교사들의 경우 1948년까지는 이전부터 한국에 거주하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입국허가를 받지 못함으로써 한국에서 활동하는 회원 수가 감소하였습니다.

1949년 6명의 새로운 회원이 한국에 왔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던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면서
아시아 지부에 속해있던 한국 골롬반회가 한국지부로 독립하게 되었고
지 브라이언(Brian Geraghty) 신부가 초대 지부장에 선임되었고 현 동소문동 골롬반 본부 부지를 매입하였습니다.

1950년대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당시 38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쟁 중에 7명의 골롬반 회원이 사망하고 2명은 포로가 되어 4년 동안 북한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습니다.
전쟁 직후 기아와 질병이 가장 큰 문제였으므로 교회는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주는 구호센터가 되었는데
골롬반 회원이 사목하던 본당들도 이러한 일들을 하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이때 한국의 골롬반 회원 수도 급격히 증가하여 대략 36명의 신부들이 강원도에서 사목을 시작했으며
1955년 구토마(Thomas Quinlan) 신부가 춘천 대목구의 첫 주교로 서임되었습니다.

전라남도의 경우 45명의 골롬반 회원들이 부임하여 1953년 원요한(Sean Savage)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를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여 전국 본당에 뿌리 내리게 하였습니다.

1957년 현 헤롤드(Harold Henry) 신부가 광주 대교구의 주교로 서품 되었으며
임피제(P.J. McGlinchey) 신부는 1954년 제주의 가난 퇴치를 위하여 목축업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에는 돈암동과 왕십리에 처음으로 2개의 본당을 설립하였습니다.

1960년대

1960년대에는 4·19 민주화 운동으로 새로운 시대가 왔지만 이듬해 5·16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의 제 3공화국이 시작되었습니다.
1965년 원주교구가 춘천교구에서 분리되면서 지학순주교가 첫 교구장이 되었고
11명의 골롬반 회원들이 원주교구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69년에는 약 150여명의 골롬반 회원들이 한국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춘천교구와 광주교구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1970년대에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사목활동이 시작되었고,
1978년 무렵에는 서울에만 25개의 본당을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지학순 주교 투옥사건’과 ‘안동교구 가톨릭 농민회 탄압’ 등의 사건은 한국 골롬반에 큰 영향을 끼쳤고,
1976년 골롬반 총회에서 ‘정의를 위한 투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골롬반회 내에 정의평화위원회의 설립을 제안하게 됩니다.

1980년대

1980년대에는 새로운 선교에 대한 이해가 생김에 따라 본당사목 뿐만 아니라
도시빈민, 단주 및 단도박 교육 프로그램, 토착화 연구, 노동사목, 생활상담, 유기농법 농사,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한 프로그램 등으로
사도직이 다양화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인 회원에 대한 양성을 시작하였고 1985년 첫 그룹인 3명의 신학생이 입회하였습니다.

1990년대

80년대에 시작된 새로운 관점들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이들을 선교의 동반자로 받아들여 함께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1991년에는 골롬반 선교잡지인 ‘변방선교’가 출간되기 시작하여 한국 신자들에게 선교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1989년에 발족되어 파견준비를 해왔던 평신도선교사 첫 팀이 1990년에 필리핀으로 선교를 떠났으며,
1995년에는 아일랜드에서 평신도선교사 첫 팀이 한국에 도착하여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93년에는 첫 골롬반 한국회원인 김종근 부제가 사제품을 받았고 곧이어 남미 칠레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부터는 해외선교에 관심 있는 교구사제들을 지원사제로 받아들여 남미와 필리핀에 파견하여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선교 지향

한국에서 골롬반회가 지향하는 활동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첫째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현장에서 함께 활동하는 것과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2000년전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변두리의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선교사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골롬반회가 그동안 외방선교회로서 다른 문화 속에서 활동해 온 풍부한 경험을 한국 교회와 나누어
한국 교회가 더욱 선교화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골롬반 한국 선교사들이 칠레, 페루, 일본, 중국, 필리핀, 미국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해외로 파견되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선교교육을 실시하는 등 골롬반의 선교경험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골롬반회가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1933년부터 현재까지를 되돌아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변했고, 골롬반도 역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고향을 떠나서 다른 민족과 함께 삶과 신앙을 나누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지금 우리들에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신앙과 문화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만남을 통하여 선교사와 지역교회 모두가 새롭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외방선교를 통해서
세계와 교회에 주시는 귀중한 선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