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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12-28 14:52:24 댓글: '0' ,  조회 수: '869'

골롬반회 평신도선교사_김선희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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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았던 필리핀의 빠야타스(Payatas)는 쓰레기 매립지 주변에 형성된 마을입니다. 하루에 약 3,000톤의 쓰레기가 수집되는 퀘존시의 쓰레기 매립지로 필리핀 내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매립지입니다. 2000년 7월, 폭우로 인해 매립지가 무너져 내려 약 1,000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되어 매립지가 잠정폐쇄되었을 때도 청소부들과 주민들의 요청으로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개장될 만큼 쓰레기 매립지는 빠야타스 주민들에게 중요한 생계수단입니다. 쓰레기를 마을에서 수거해오는 일뿐만 아니라 매립지 안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주어다 고물상에 팔거나 버려진 매트리스와 솜을 리폼해서 새 제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비닐을 깨끗이 세척해서 업체에 판매하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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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이었습니다. 빠야타스에 온 친구에게 마을을 안내하면서 동네를 다니고 있었는데 평소 다니던 길이 공사 중이라 다른 길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골목 끝 아이들 무리에서 “아떼, 아떼 써니..” 하며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아이들에게 다가가 보니, 아랫동네 공소에서 만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차 위에서 놀고 있는 줄 알았던 아이는 적재함에 담긴 쓰레기들 사이에서 고철과 플라스틱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잔반이 가득 담긴 통에 물을 붓고 잘 섞이도록 손으로 저으며 돼지 여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차 뒤편 방처럼 생긴 곳에도 아이가 있었는데 판매할 쓰레기를 모아 놓는 곳인 듯 쓰레기가 담긴 포대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습니다.

뜻밖의 광경에 저는 놀랐습니다. 공소에서 만난 아이들은 까불고, 뛰어놀기 좋아하고, 때로는 짓궂은 장난으로 혼도 나는 8-10살 또래의 모습이었는데, 그 날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이미 생계 활동을 시작한, 일이 능숙하게 손에 익은, 겉모습은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까리따스 수녀님들이 공소에서 무료급식을 합니다. 봉사자들이 음식을 조리하는 동안 아이들은 교리공부를 하고, 공소 한편에 마련된 간이 이발소와 양호실, 목욕탕은 필요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간단한 상처 치료와 감기약, 소화제 같은 비상약을 나눠주는 일을 했는데, 손의 물집, 발의 무좀, 창상, 여기저기 긁히고 곪은 상처 등 몸이 온전한 날이 없는 이 아이들은 저의 단골 환자(?)였습니다.

잘 씻지 않아 상처 부위는 까맣고, 흙 같은 오염물질이 끼어있어 치료 전에 식염수로 상처 부위를 씻어 내는 것이 서로에게 힘든 일이었습니다. 상처에 청결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에 안 씻고 오면 치료 안 해준다고 으름장도 놓고, 발에 상처 안 생기게 신발 신고 다니라고 잔소리도 하고. 짓궂은 장난에 화도 내고, 얼마나 험하게 놀면 상처가 이럴까, 씻는 걸 왜 이렇게 싫어할까, 계속 바르라고 연고를 주는데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보며 연고를 제대로 바르고 있나 버리는 거 아닌가 싶고... 그런데 골목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난 후 정신이 번쩍!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선교였는데,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마음을 나누는 것에 소홀했던 자신을 발견하곤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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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들의 상처가 왜 생기게 되었는지, 왜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지, 아무리 매일 연고를 발라도 차도가 잘 보이지 않고, 2차 감염으로 덧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과 마주하며 연민이 퍼져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와중에 저를 발견하고 사람 무장해제 시키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준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사랑을 나누러 온 제가 도리어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매주 공소에 와서 교리 참석하고, 상처 치료 받고, 뛰어놀고, 점심을 먹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들을 만나는 제 마음가짐입니다. 똑같이 으름장을 놓고, 잔소리하고, 장난을 치지만 아이들 입장이 되어 이해해 보려고 하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애정과 관심을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많이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만남을 통해 아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스스로 귀한 사람이라 여길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바깥의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볼 기회가 생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예쁜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가진 달란트로 밤하늘의 별처럼 환하게 빛을 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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