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회소식
  • 선교일기
  • 자유게시판
  • 궁금해요
  • 관련사이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12-09 11:52:45 댓글: '0' ,  조회 수: '4659'
*** 2014년 「사목정보」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LM_01.jpg

 

피지에서 온 평신도 선교사

 

 

- 마리아 씨와 로세나 씨 -

 

 

남태평양 서부 멜라네시아(Melanesia)의 남동부에 있는 섬나라 피지 선교사 2명이 한국에서 5년째 활동 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두 사람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평신도 선교사 마리아 부니이비(Maria Vunivi) 씨와 로세나 비아우(Losena Biau) 씨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그녀들을 만나 한국에서의 복음 선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외방 선교사
사람들을 섬기고 돌보는 외방 선교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평신도 선교사의 꿈을 키워왔던 두 사람이 한국에 파견되어 선교사로서 처음 내디디는 걸음은 수월치 않았다. 이국땅 낯선 사람들 속에서 살려면 언어가 필요하고 문화와 기후에도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로세나 씨도 첫 임기 3년을 마치고 두 번째 임기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사목에 좀 더 분명하게 투신할 수 있었다. 말을 익히고 한국인들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자신을 추스르고 소명을 분별하는 가운데 맡겨진 소임을 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임기 중반을 지나는 그녀들이 5년여 동안 한국인들에게 내어준 것은 선한 마음과 따뜻한 손길이었다. 약자들과 만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평신도 선교사의 삶은 이렇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걸으며 선교사 자신도 복음화되어 가는 것이다.

 

 

마리아 부니이비
마리아 부니이비 씨는 올해 나이 32세로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사목하는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던 그녀는 필리핀, 칠레 등지에서 피지에 온 평신도 선교사들을 만나 자신의 나라를 떠나 이국땅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삶에 눈을 떴다. 평소 청소년사목에 관심을 가지고 수도 성소를 꿈꾸기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새로운 열정으로 가득찼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들 안에 들어가서 평신도 선교사로서 사는 것이 제게 더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수도자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저희 평신도 선교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았습니다. 평신도 선교사는 언제라도 유연하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 갭(gap)이 큰 한국에서는 평신도 선교사가 그들의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2009년 4월 한국에 온 그녀의 첫 선교지는 삼양동 선교 본당이었다. 독거노인을 방문하고 공부방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재활용 센터에서 봉사하며 첫 임기를 채웠다. 결코 길지도 짧지도 않은 3년은 그녀가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한국말은 배우기 힘들었고, ‘빨리 빨리’ 문화는 적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시간은 그녀 자신의 내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사랑받고, 사랑을 배워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선교 영성이 자라고, 저 자신의 부족한 점 즉 제한을 넘어서 세계를 볼 수 있는 관(觀)이 넓어졌습니다.” 첫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 피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삼양동 공동체 사람들의 끈끈한 정을 한국에 두고 온 것 같은 마음이 들어 한국에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임기를 요청했습니다.”

 

LM_02.jpg 그녀는 현재 삼양동 선교 본당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 삼양동 본당의 사목 계획에 따라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포부도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1년 후에는 두 번째 임기를 마치게 된다. 또다시 한국에 돌아온다면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어린이, 혼자 사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못다한 아쉬움도 있다. “웃고 떠들고 즐겁게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녀는 끝으로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한국에서의 삶은 아직도 어렵고 도전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선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사람들과 함께 사는 시간은 저를 바라보고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해외 선교사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저 자신을 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로세나 비아우
로세나 비아우 씨는 올해 나이 31세다. 대학에서 호텔 관련 전공을 한 그녀는 본당에서 청년 활동과 주일학교 교사, 노인 가정 가사 지원 등에 앞장섰으며 청년사목에도 관심을 가졌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왈리스 퓌튀나(Wallis et Futuna) 출신이다. 식인(食人) 문화(cannibalism)m가 있던 어머니 나라에서 원주민들에게 선교하던 선교사가 순교해 성인품에 올랐다. 어머니를 통해 성인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그녀는 선교사의 신원과 활동을 동경했다. 그러다 본당에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를 만난 그녀는 평신도 선교사의 꿈을 키우며 매일 미사를 드리며 기도했고, 마음을 굳힌 어느 날 본당 신부에게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도 평신도 선교사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국에 파견된 그녀의 첫 번째 선교지는 제기동 본당이었다. 영어 교리, 영어 성경 모임 진행, 에이즈 센터 봉사, 지역의 독거노인 방문 등으로 적응 기간이 채워졌다. 첫 선교지에서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가족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피지의 문화였다. “제가 막내라서 그런지 피지에 부모님을 두고 떠나왔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또 날씨와 한국의 성급한 문화도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말을 사랑한다는 그녀는 한국말이 배우기 어렵지만 가능한 한 한국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해 왔다. “본당에서 활동하며 만나는 분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 ‘아니오’, ‘감사합니다’ 정도의 말만 했습니다. 한국말은 알아들어도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 한마디 하게 되면 예의 없게 반말을 할 수도 있어서 더욱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렇지만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할 때는 노인들에게 천천히 한국말로 했습니다. 노인들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한국말로 말하고 대답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들과 함께 살며 그녀도 차츰 성장했다. “동네 사람들은 저를 보면 ‘야, 어디가’하고 말을 겁니다.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는 저의 선교사 신분이 도전이 될 수도 있지만, 그분들은 제가 기도하는 것을 존중합니다. 현존 자체 즉 각자 자기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게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외국에서 선교사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저의 작은 선교사 생활이 자신감을 유지하게 합니다.”

 

LM_03.jpg 그녀가 첫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유는 제기동에서 만난 독거노인 할머니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 할머니는 걸을 수 없었습니다. 화장실 사용과 샤워 등을 도와드렸습니다. 하루는 할머니가 딸을 만날 약속이 있어서 제가 할머니를 등에 업고 미용실에 모시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날 딸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와 함께 하는 것이 평신도 선교사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을 향한 인정어린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와 두 번째 임기를 지내고 있는 그녀는 현재 금호동 본당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독거노인을 방문하며, 국수 나눔 봉사와 어르신 기도 모임 등에 함께 하고 있다. 끝으로 그녀는 한국 신자들의 열심한 신앙생활이 부럽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도 생활과 공공장소에서 성호경을 긋는 모습이라고 한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평신도로서 평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평신도 선교사 두 사람 마리아 씨와 로세나 씨. 그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와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다. 두 사람이 속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프로그램의 배경은 1918년에 시작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창립자들의 전망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교 사업에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이 다 함께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1977년에 시작된 평신도 선교사 프로그램에는 현재 한국인을 포함하여 60여 명이 장기 혹은 단기 임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17명의 평신도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파견되어 활동을 해왔고, 지금 한국에는 필리핀 선교사 2명과 피지 선교사 2명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 필리핀으로 평신도 선교사 6명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13개 팀을 필리핀·피지·대만·일본·미국·아일랜드·칠레·미얀마로 파견하였다. 지금까지 파견된 한국인 평신도 선교사들만 총 55명에 이른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가입을 하셔야 글쓰기가 가능합니다!(실명등록필수) 관리자 2008-09-16 19419
3 [한국] 한국지부 전요한 신부 file 관리자 2017-01-17 1452
» [한국] 피지에서 온 평신도 선교사 file 관리자 2014-12-09 4659
1 [한국] 하나의 평신도로 살아가며 관리자 2012-09-24 5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