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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6-27 15:21:14 댓글: '0' ,  조회 수: '6099'
***** 아래 글은 「생활성서」 2013년 7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

 

 

 

견진 받는 날 풍경

 

 

 

박정호 _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토요일 오후, 오늘은 견진성사가 있는 날이다. 우리 부부도 서둘러 아이들을 챙겨 집을 나섰지만 미사시간에 조금 늦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미사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까지 사람들이 슬금슬금 들어와 빈자리를 채울 텐데, 오늘 같은 날은 최소 한 시간 정도는 일찍 도착했어야 했다. 모르진 않았으나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도착하고 나서야 아차차 하며 뒷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공소 마당은 시끌벅적하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마치 무슨 학교 졸업식이나 예식장에 온 느낌이다. 오늘 하루를 위해 준비했을 화려한 드레스와 멋진 정장을 갖춰 입은 신자들과 그 가족들, 공소 정문 앞에 앞다투어 좋은 몫을 잡아 진을 치고 있는 꽃다발 장수들, 도로를 가득 메운 각지에서 몰려온 승용차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 일찌감치 나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경찰들까지. 하긴 2년여의 기나긴 견진교리 과정을 모두 마치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으니 당사자나 그 가족들의 기분은 여느 학교 졸업식 못지않으리라. 더군다나 그 벅찬 해방감과 더불어 어쩌다 가끔 TV에서나 볼 수 있을 산티아고 대주교님께서 이 외진 곳을 방문하신다는 사실과, 어젯밤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때마침 딱 그치고 화창하게 갠 날씨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흥분되고 설레게 한다.

 

시끌벅적한 바깥풍경을 뒤로하고 공소 안으로 들어가니, 아니 들어가려고 하니, 입구까지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도저히 유모차를 들이밀 수가 없다. 자캐오가 따로 없다. 다행히 반대쪽 문이 열려 있어 슬금슬금 들어가보니 분위기 어수선하기는 안팎이 별반 다르지 않다.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으로 전례에 집중하는 이들은 견진성사를 받는 이들과 일부 신자들뿐, 이런 전례가 익숙지 않은 대부분의 하객들은 주교님이나 신부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마침 가운데 통로에는 붉은색 카펫도 깔려 있으니 제단 위의 사제들은 여느 영화제의 슈퍼스타 못지않다.

 

때마침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이 견진 특수(?)를 놏치지 않기 위해 저마다의 영업에 한창인 분들 중에 사진사 아저씨가 눈에 띈다. 마치 옛날 초등학교 졸업식이나 운동회에서나 보았을 법한 사진사 아저씨는 제법 묵직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한 손에 커다란 십자고상을 든 채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 모습이 참 재미있다. 사진사 아저씨가 그 커다란 십자고상을 견진 받을 아이에게 건네면 그 아이는 십자고상을 가슴 높이까지 들고 사뭇 진지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거의 한결같은 그 포즈는 예외가 없다. 배경도 꼭 성모상 앞 아니면 화단. 이렇게 들어오는 사람마다 한 사람씩 붙들고 사진을 찍고 나서는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진들을 재빨리 뽑아 ‘견진성사 기념’이라고 글씨가 새겨진 종이 액자에 넣어 공소 마당에 진열을 하는 것이다. 나중에 미사가 다 끝나고 사람들이 나오면 그 사진을 보고 살지 말지를 결정을 하게 되는데, 내 경험상 사진이 잘못 나온 경우를 빼고는 안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가 일반화된 세상에 저런 아날로그 상품이 통할까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통한다. 간혹 가정방문을 해 보면 예외 없이 거의 모든 집들의 거실 잘 보이는 곳엔 그 사진들이 걸려 있다. 그야말로 견진성사를 ‘인증’하는 필수기념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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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강림대축일에 있었던 본당 견진성사 풍경

 

 

이날 사람들에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파티이다. 사실 우리 부부도 오늘 선교사로 일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견진성사를 받는 한 아이의 파티 초대를 받고 서둘러 오게 된 것이다. 하객인 셈이다. 가톨릭 문화를 가진 칠레는 가족 중 누군가가 세례나 첫영성체 혹은 견진을 받는 날이면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올라오셔서 온 집안 식구들이 다 모이는 큰 잔치가 벌어진다. 신자든 비신자든 상관이 없다. 평소 그다지 열심히 신앙 활동을 하지 않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견진이든 세례든 뭐든 성당에서 하는 그 무엇은 살아가면서 거치는 하나의 통과의례이고, 그저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해 주면 되는 것이다. 때문에 간혹 개신교 신자인 친척이 견진대부를 서겠다며 나타나는 것이나 아기의 세례식 때 대부모를 서너 명씩 세워 가족의 세를 과시하는 경우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여하튼, 이렇게 집안의 대사인 견진에서 파티가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견진성사는 반드시 토요일 오후이어야만 한다. 과거 주교님의 일정 때문에 일요일로 견진 날짜가 잡혔다가 주임신부님이 수많은 신자들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미사가 끝나고 나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하루 혹은 이틀 전부터 준비해 뒀을 파티를 신나게 즐길 것이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이곳에 우리와 같지만 또한 다른 모습의 교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다른 모습의 신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불편해하기도 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기에 다소 진지함이 결여돼 보이는 그 겉모습 속에는 그러나 누구보다도 순수한 그들만의 신앙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쩌면 이곳 칠레의 하느님은 점잖게 옥좌에 앉아 계시기보다는 얼른 아이들의 머리 위에 초강력 성령불꽃을 팍팍 쏴 주신 다음 돌아가서 신나는 춤판을 벌이고 싶어 하실지도 모르겠다.

 

 

 

 

* 박정호 선교사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2008년부터 칠레에서 아내 김규희 선교사와 함께 청소년·가정 사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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