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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9-04 15:38:03 댓글: '0' ,  조회 수: '5782'
***** 아래 글은 「생활성서」 2013년 9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

 

 

 

젊은이들의 에너지

 

 

 

박정호 _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지금 남미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를 맞아 전 세계에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고, 인터넷과 각종 언론에서 연일 교황님의 동정을 보도하는 등 열기가 뜨겁다. 성격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함께 모였을 때 만들어 내는 거대한 무형의 에너지는 그 자체로 경이롭고 신비롭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혹은 불가능하게 한다.

 

본당에 손님들이 찾아왔었다.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는 호주 청년들이 브라질로 가기 전 단기 선교체험을 하기 위해 본당을 방문한 것이다. 주교님과 청년 50명이 1주일간 본당에 머물며 칠레에 관해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본당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려 공동체들을 방문하고, 갖가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전례를 준비했다. 첫날에 만났을 때는 모두가 어색해했다.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수줍어하거나 사진만 찍어댔다. 하지만 그런 어색함들도 둘째 날이 되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함께 어울려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친해져서는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총동원하여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했고, 서로가 깊이 있는 대화는 어려웠을 텐데도 여기저기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활기가 넘쳤다.

 

언어의 장벽도 있고 1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서로를 알기에는 많은 제한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젊은이들답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변두리 본당에 선교를 훌륭하게 하고 떠났다. 그 방법은 바로 ‘열정’이었다.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한데 뒤섞여 만들어 내는 그들의 열정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난 수 개월 동안 행사를 준비해 온 어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고, 방문하는 곳마다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뜨거운 열정으로 본당 전체를 들썩이게 했던 그들은 아쉬움과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호주 청년들이 떠나고, 그들이 떠난 자리도 아직 채 식지 않은 지난주, 시내의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는 아주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산티아고의 수호성인인 야고보 사도 축일을 기념하여 그동안 교회와 칠레 사회에 특별한 헌신을 해 온 분들에게 교구장님이 ‘야고보의 십자가’를 수여하는 날이었다. 우리 본당에서도 50년이 넘게 선교사로 살아오고 계신 골롬반회의 패트릭 신부님이 이 십자가를 받는 경사를 맞이하게 되어, 나는 몇몇 신자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기념미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칠레 교회의 중심이자 유서 깊은 문화재이기도 한 산티아고 대성당은 성가대의 장엄한 성가와 제단을 가득 메운 붉은 제의의 주교님들, 신부님들과 함께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강론이 끝나고 교구장님이 십자가 수여를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신자석에서는 많은 축하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미사 전부터 제대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이곳저곳에서 터졌다. 신자들은 수상자들의 그간의 삶과 업적을 존경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고, 모두가 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몇몇 성당 관리를 맡은 사람들이 다급한 얼굴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긴 했지만, 그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수상이 모두 끝나고 성찬의 전례가 막 시작하려던 찰나, 뒤쪽의 성당 입구에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수백 명의 청년들이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밀고 들어왔다. 성당 안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성당 관리인들은 그들이 제대 쪽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위해 장(長)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난입한 청년들은 의자를 발로 차고 부수며 앞쪽으로 이동하려 하였고, 성당 옆에 세워진 성상(聖像)들 위에 올라가 낙서를 하고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였다. 그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와 깃발에는 ‘낙태의 자유’를 주장하는 갖가지 그림과 표현들이 들어 있었다. 신자들은 모두 당황했지만, 그 난리통에도 교구장님이 조금의 미동도 없이 미사를 진행하시자 제대 앞으로 가까이 모여 더욱 크게 성가를 부르며 미사에 집중하였다. 혼란은 미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중간에 무장한 경찰들이 반대편 입구로 들어왔으나 더 큰 충돌을 우려한 신부님의 반대로 그들은 성당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러자 난입한 젊은이들의 환성과 야유는 더욱 커졌고, 뜻 깊어야 할 축제가 난장판이 된 것을 목격한 많은 신자들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주일, 각 본당에서는 미사 중에 교구장님의 편지가 낭독되었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201309_1.jpg

     성당 안으로 난입한 청년들이 쓰러뜨린 고해소를 신자들이 세우고 있다.(출처:www.aciprensa.com)

 

 

 

근래에 나는 서로 상반된 젊은이들의 에너지들을 만났다.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같은 지향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일 때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것은 한 곳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식지 않는 따스한 온기를 남겨 준 반면, 또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많은 상처만 남겨 주고 원래 있던 열기마저 식혀 버렸다. 인간이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해 낼 수 있음은 분명 하느님의 선물일 것인데, 젊은이들이 만들어 내는 그 모든 에너지들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곳에만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309_2.jpg

   호주에서 온 청년들과 본당 청년들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모습들.

 

 

 

 

* 박정호 선교사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2008년부터 칠레에서 아내 김규희 선교사와 함께 청소년·가정 사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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