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회소식
  • 선교일기
  • 자유게시판
  • 궁금해요
  • 관련사이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3-19 11:20:44 댓글: '0' ,  조회 수: '5129'
*** 2014년 3월 16일 「평화신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4)
"주님, 어린 천사 안헬리카의 영혼을 받아 주세요"

 

 

 

생후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난 어린 아이
선교사, 아이 부모와 깊은 슬픔에 잠겨

 

 

황성호 신부(광주대교구)

 

 

칠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티아고의 한 지구청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시던 수녀님에게 한국 신부라고 소개하는데, 수녀님이 웃으시면서 이러십니다. "이제 스페인이 아니라, 한국에서 남미를 정복하러 오는군요." 인사말을 하면서 우스개 소리로 하셨겠지만, 요즘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원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선교사

2013년 6월 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교사들에게 보내신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선교는 단지 지리학적 영토 문제가 아니라, 민족들과 문화들 그리고 독립된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선교는 사람들의 전통과 지역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모든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근본적인 선교는 개종의 권유가 아닙니다. 희망과 사랑을 가져다주는 그 길을 비추는 삶의 증거가 교회의 근본적인 선교입니다.”

 

실력이 없는 제가 번역을 해서인지 좀 매끄럽지는 않지만, 선교사들에게 매우 강한 메시지입니다. 해외 선교는 영토확장이나 업적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구, 수도회, 선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선교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파견된 선교사 자신이 선교사로서 얼마만큼 잘 양성되어 있고, 순수한 선교의 동기가 있으며, 한국에서 자신이 지녔던 것들을 뒤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교구나 수도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외 선교사 파견도 조심해야 합니다. 해외 선교가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현지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라는 의미에서 원주민들과 관계하는 그 당사자는 바로 선교사들입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의 선교 동기, 자질, 영성 등이 아주 중요합니다.

 

한국인 사제, 수녀, 평신도 선교사 900여 명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해외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업적을 쌓기 위함이 아니며,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발걸음! 기쁜 소식이 돼 원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현재의 선교사들입니다. 한국의 우월한 가톨릭 신앙을 주입해 한국처럼 바꾸려는 것, 이것은 또한 또 다른 모습의 폭력, 곧 정복이 아닐까요?

 

 

 20140318_1.jpg

▲ 선교사는 현지인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가족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사진은 본당 교우들. (사진제공=황성호 신부)

 

 

세례받지 못한 한 천사의 죽음!

칠레 가톨릭 장례 문화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장례 마지막에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장례 미사가 끝난 후, 가족 대표가 나와 고인에 대한 회상과 미사 참례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고인과 가족이 퇴장할 때, 참례자들은 모두 박수를 칩니다.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고인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기 위한 행위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문화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동네 주민 대표인 아멜리아(Amelia) 자매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침울함과 슬픔에 잠긴 표정이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손녀인 안헬리카가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장례 미사를 해 주겠다고 하니 부탁이 있다고 합니다. 안헬리카가 아직 세례를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나서 그러니 장례미사 때 세례를 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열심한 신자였던 아멜리아 자매의 부탁이지만, 세례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성사인데, 장례 미사를 하면서 세례를 줄 수가 없기에 참 안타까웠습니다. 대신 장례 미사 때, 손녀 안헬리카에게 기도와 축복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장례 미사가 시작되고 많은 사람이 성당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 시작예식을 하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아멜리아 자매의 손녀 안헬리카는 세상에 태어나 겨우 한 달 살았고, 그것도 내내 아프다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제야 왜 아멜리아 자매가 제게 세례를 부탁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안헬리카의 관은 아름다운 분홍색 털실로 장식돼 있었고, 크기는 작은 바구니 정도였습니다. 미사 내내 신자들과 가족들은 울었고, 저 또한 미사를 제대로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슬픔에 잠겼습니다. 항상 장례 미사 때 했던 강론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안헬리카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하자고 했고, 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이 하느님께로 향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했습니다.
그리고 고별식. 안헬리카의 아빠가 제대 앞에 나와 신자들과 가족 친지들께 몇 마디 말을 했습니다. “내 딸 안헬리카는 세례도 받지 않았고, 자기 침대도 갖지 못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교복도 입지 못했고….”

 

안헬리카의 아빠는 구슬프게 울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제대 앞으로 나가 위로해주었고, 이후 특별한 예식을 하나 했습니다. 안헬리카를 위한 간절한 기도와 성수로 그녀를 축복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관을 연 순간! 제 몸은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눈을 감고 분홍색 옷을 입고 누워 있는 안헬리카의 모습은 흡사 하느님의 어린 천사와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겨우 몸을 움직여 부르르 떨면서 아이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했고, 비록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성수를 통해 세례를 대신하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천사 안헬리카를 잘 받아주십시오. 당신 앞에서 귀여운 재롱을 많이 보일 것입니다.”

 

미사 후, 가까운 친척에게 안헬리카가 어디가 아파서 이렇게 됐냐고 물었습니다. 보틍의 아이들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열이 많이 나고 잘 먹지 못하더니, 부모 앞에서 재롱 한 번 부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시골이고 가난한 동네,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 버린 한 달… 모두가 돌아간 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너무 커서 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도움 주실 분

SC은행 225-20-607098

예금주 : 성골롬반회 전교부 한국지부

 

 

 

엉덩이(?)가 예뻐요

 

아마도 한국 사람들이 스페인어 발음을 가장 잘 구사할 것입니다. 영어와는 달리 스페인어는 쓰인 알파벳을 그대로 읽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어려운 알파벳이 있습니다. F(야훼)와 P(페) 그리고 L(엘레)와 R(에레)입니다.

 

정확하게 구분해서 발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발음 하나로 의미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신자 한 분이 제게 사진을 하나 부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진이 참 예쁘다”라고 말했는데, 그 신자분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진이라는 단어는 foto(호~토)인데, 제가 발음을 뽀~토(Poto)라고 한 것입니다. 발음 하나 잘못해서 “이 사진이 참 예쁘다”가 아니라, “이 엉덩이가 참 예쁘다”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발음 교정이 필요했습니다. 주일 미사 후, 그래도 발음이 제일 괜찮은 복사 다프네(Dapne)를 불렀습니다. R발음을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쉽지가 않았습니다. 계속 발음해 보라는 다프네의 재촉에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프네가 그러네요. 자기도 처음부터 이 발음이 되지 않아서 집에서 혼자 많이 연습했다고. 처음부터 그 언어를 쓰기 때문에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프네가 그러네요. “Padre. Tenga paciencia"(피드레 인내를 가져).

 

어린 친구에게 이런 말까지 들어가면서 참! 그러나 다프네에게 아주 잘 배운 것 같습니다. 매주 미사 후에 몇 번을 만나 발음 연습을 했고, 또 혼자 방에서 이상한 사람처럼 F(에훼)와 P(페) 그리고 L(엘레)와 R(에레)의 발음을 큰 소리로 연습하니 발음이 잘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한 발음을 하도록 잘 지도해준 우리 다프네에게 감사했습니다. 수강료는 초콜릿을 주기로 했는데, 작은 노트도 함께 선물로 줬습니다.

 

가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빠집니다. 다 안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것인데…. 만일에 제가 속으로 ‘이런 어린애한테 뭐 배우겠어’라는 식이었다면, 아마도 선교 4년째인 지금도 이 발음들을 제대로 못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조금만 낮추면 많은 것이 다가오는 것인데 우리는 이 간단한 진리도 잊고 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다프네! 고맙고 진심으로 감사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가입을 하셔야 글쓰기가 가능합니다!(실명등록필수) 관리자 2008-09-16 18420
36 [칠레] 죽은 이를 기억하려는 아름다운 마음_문석훈 신부 관리자 2016-11-16 1064
35 [칠레] 원치않은 밤손님의 방문_문석훈 신부 관리자 2016-10-24 1024
34 [칠레] '산티아고 순례길' 안내 해달라고요? file 관리자 2016-03-29 1702
33 [칠레] 예수님 걸음에 맞추라는 말 file 관리자 2015-01-02 3758
32 [칠레] 환경 변화는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주님 부르심 file 관리자 2014-04-04 5102
31 [칠레] 3년 정든 시골 본당 뒤로한 채 '산티아고'로 file 관리자 2014-04-04 5009
» [칠레] "주님, 어린 천사 안헬리카의 영혼을 받아 주세요" file 관리자 2014-03-19 5129
29 [칠레] 선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조바심 아닌 진실한 기다림 file 관리자 2014-03-13 5586
28 [칠레] 선교사, 모든 것을 받아 들이는 하느님 사람" file 관리자 2014-02-27 4742
27 [칠레] 안락함 벗고 산티아고 빈민가의 뙤약볕 속으로 file 관리자 2014-02-27 4941
26 [칠레] 오늘살이 file 박정호 2013-12-08 4856
25 [칠레] 젊은이들의 에너지 file 관리자 2013-09-04 5381
24 [칠레] [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하)- 산티아고 도시 빈민들의 삶 file 관리자 2013-07-26 6236
23 [칠레] [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중)- 배운 것이 더 많은 선교사 생활 file 관리자 2013-07-19 5721
22 [칠레] [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상)- 칠레 원주민(?)으로 24년을 지낼 수 있었던 비결 file 관리자 2013-07-15 5850
21 [칠레] 견진 받는 날 풍경 file 관리자 2013-06-27 5616
20 [칠레]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칙 file 관리자 2013-05-30 5606
19 [칠레] [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하)- 하느님 안에서 이루는 친교의 은총 file 관리자 2013-04-16 5348
18 [칠레] [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상) - 누구보다 아파하고 계실 예수님 file 관리자 2013-03-06 5905
17 [칠레] 굿바이, 마리아 할머니 file 관리자 2013-01-29 5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