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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11-16 20:50:18 댓글: '0' ,  조회 수: '1063'

** 2016년 11월 20일 발행 「가톨릭신문」(제3020호, 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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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칠레] 죽은 이를 기억하려는 아름다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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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훈 베드로 신부(골롬반회 지원사제, 수원교구)



어느덧 11월이 됐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달을 위령성월로 정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별히 11월 2일은 위령의 날 미사를 성대히 봉헌합니다. 칠레 사람들도 꽃을 들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묻혀 있는 묘지를 방문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이 칠레의 국가공휴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위령의 날이 아닌 모든 성인 대축일에 묘지를 찾고 미사를 드리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 두 날을 같은 날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볼리비아에서 언어를 배울 때에 종종 봤던 경험이 있습니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분들이 그냥 “빵빵”하고 경적을 울리는 것입니다. 길이 막히는 것도 아니고 무단횡단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운전기사분들이 경적을 울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스페인어 선생님과 버스를 탔을 때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빵빵”거리는 그 위치에 아니미따 (Animita)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죽은 사람이 있을 때에 그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그곳에 아주 작은 집을 짓고 그곳에 유품이나 꽃과 사진들 그리고 그가 즐기던 취미, 좋아한 축구팀 등으로 꾸밉니다. 죽은 이를 위한 작은 사당처럼 말이죠. 이것을 ‘아니미따’라 합니다. 볼리비아만이 아니라 칠레에도 이런 아니미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미관상의 이유로 도시 중심지에는 대부분 정리를 해서 없지만 아직 많은 동네, 특히 제가 있는 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작년, 시몬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할 때, 교통사고로 죽은 청년들의 부모가 참례했습니다. 공소 봉사자가 교통사고 소식과 함께 그들의 부모들이 와 있다고 신부님께 알려드렸죠. 신부님이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고 돌아와 사고 소식을 저에게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회의가 있어서 가던 길에 사고현장을 지나가게 됐습니다.

시몬 신부님이 알려준 그 장소에는 아니미따가 만들어져 있었고, 많은 꽃과 청년들의 사진들과 십자가로 장식돼 있었습니다. 사고 1주년이 되던 날, 그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곳에 찾아가 꽃과 풍선으로 장식하며 그들을 아직 잊지 않고 있음을 알려줬습니다. 인도에 만들어져 있어 통행에 불편을 주지만 누구도 치우려하거나 항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실 아니미따(Animita)는 교리적으로 맞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장소에 죽은 영혼이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 믿음이 있기에 그곳에 죽은 이를 기억할 만한 것을 만들고, 때가 되면 찾는 것입니다. 비록 교리와 다른 믿음이 있지만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와 나누었던 여러 추억을 간직하고자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특히 사고로 인한 죽음은 가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바쁜 세상, 힘든 세상을 살아간다는 핑계로 그런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는 그런 기억과 추억을 하고 있는 이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만해라 지겹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의 죽음에도 경적을 울리며 관심을 나누는 이곳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여러분 안에도 똑같이 드러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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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를 기억하기 위해 죽은 장소에 유품이나 꽃, 사진 등으로 꾸민 ‘아니미따’(Anim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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