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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2-08-31 10:14:24 댓글: '0' ,  조회 수: '10023'
***** 아래 글은 생활성서 8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

 

 

 

둘째 출산 만감

 

 

박정호 _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이른 아침, 일주일째 접어든 아내의 산후조리로 많이 피곤하긴 하지만, 크게 숨 한 번 들이키고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첫째아이 밥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가방 챙겨 어린이집에 밀어 넣다시피 보내고 나니, 겨우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시내에 사는 엘리자베스 아주머니가 보내 주신 미역국이 없었다면 그나마의 여유도 없었을 터인데, 베로니카보다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를 낳으면서 워낙 고생이 심했던 터라 둘 다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수월하게 태어났다. 베로니카의 몸 상태도 예전보다 훨씬 좋았고, 우리 두 사람도 이곳 언어와 시스템에 적응이 되어 불필요한 걱정과 두려움을 많이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엄마는 뭐 아무나 되나? 헤헤." 첫 검진결과 잘 회복되고 있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보건소를 나서면서 베로니카가 기고만장하게 내뱉은 안도의 일갈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둘째가 태어나서 기쁘다는 인사를 하긴 하지만(그리고 당연히 기쁘지만), 사실 요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다. 따끈하게 데워진 머그잔에 커피 한 숟갈 넣고 휘휘 젖고 있자니, 어젯밤 혼자 뒤척이며 이리저리 파헤쳐 놓았던 여러 생각의 줄기들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온다.

 

 

mission_20120831_1.jpg
<둘째 아들 강우가 태어나던 날>
처음 한국을 떠날 때 우리는 부부선교사로 알려졌다. 평신도로서, 그리고 부부로서 선교사의 삶을 시작하는 우리를 모두들 기대와 관심과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가족선교사가 되었다. 처음의 두 사람은 이제 네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로 인해 다른 선교사들보다 몇 배나 어려운 적응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또 한편 그 아이들 덕분에 너무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못다 한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다. 우리 부부와는 달리 그 녀석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선교사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선교사의 삶을 씨앗에 비유했다. 이국의 땅에 뿌려져 썩어 없어짐과 동시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하지만 그 씨앗이 나 혼자라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썩어 없어질 씨앗이 나의 아내, 자녀들이라면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것은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비록 그 씨앗들이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맺고 수천 수만 번의 가지치기를 통해 숲을 이룬다 할지라도, 그것은 확실히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mission_20120831_2.jpg    <공소에서 첫째 아들 시우>

 

비슷한 고민을 가졌으리라 짐작되는 아브라함 할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굳건한 믿음으로 아들까지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자신의 믿음을 위해 금쪽같은 아들을 희생시키려 했던 그 미안함과 죄책감을 훗날 어찌 감당하려 하였을까? 혹, 연세가 너무 많아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일까? 한편,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믿음의 조상'을 아버지로 둔 이사악은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왜 하필 나냐고 펄쩍 뛰었을 법도 하다. 믿음이 밥 먹여 주느냐고 소리 지르며 악을 써 보았을 법도 하다. 그런 거 저런 거 다 관두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오순도순 잘 살아 보자고 아버지에게 매달려 봄직도 하였을 것이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을 터이고 바라던 미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담히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건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 때문이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삶은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특별히 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느 선배 선교사는 선교사로 살아간다는 건 영원한 이방인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나는 과연 이렇게 칠레에 뿌리내려 칠레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 나에게는 아직도 한국 음식과 한국말이 더 익숙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 같은데, 시우와 강우는 먼 훗날 이곳 뿌엔떼알또를 떠올리며 고향의 그리움을 이야기하게 될까? 엠빠나다(우리나라 만두와 비슷한 음식)와 까수엘라(스페인식 냄비요리)를 좋아하게 될 아들 녀석들에게, 김치찌개를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끈적하고 구수한 부자지간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작은 문화 충격이 될까? 이다음에 아이들은 주위의 몇몇 지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두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게 될까, 아니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이국에서의 가난을 선택한 아버지의 젊은 날의 객기(?)를 원망하게 될까….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깊은 숨을 또 한 모금 삼키니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음… 그래, 내가 잠시 착각을 했었나 보다.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나머지 이 아이들이 '내 것'인 양 착각을 했었나 보다. 건강하고 훌륭하게 잘 키우라며 나에게 맡겨 주신 '그분의 것'임을 잊었었나 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한 가정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겨 주신 가정교회를 지키고 돌보는 그분의 일꾼이 되는 것이리라. 오늘밤은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박정호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2008년부터 칠레에서 아내 김규희 선교사와 함께 청소년·가정 사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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