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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11-29 15:40:14 댓글: '0' ,  조회 수: '5871'
*** 2013년 12월 1일 「평화신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선교지에서 온 편지] 필리핀(2) 코피노(Kopino)를 아시나요?

'지독한 가난‘의 현실 앞에 가슴 아파

 

 

박찬인 신부(대전교구)_성골롬반외방선교회 지원사제

 

 

 

 20131129.jpg

 
▲ 필리핀에는 약 2만 명의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필자.

 

 

 

요즘 한국에서도 언론에 ‘코피노’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코피노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Philipino)의 합성어로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필리핀에서 살아가는 혼혈아를 말합니다.

 

지난 10월 29일 MBC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전역에 살고 있는 코피노는 무려 2만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인의 필리핀 방문 및 거주가 늘면서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보도하더군요.

 

필리핀에는 편모 가정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남녀가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다가 임신 후 별거한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은 이혼이 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젊은 연인들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며 살다가 정말 확신이 들 때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혼인 면담을 하다 보면 아이를 둔 젊은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외국인과 결혼 선호 현상

 

그리고 편모 가정이 많은 또 다른 이유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인과 연애하고 결혼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이뤄 잘 살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필리핀 여성들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이용만 당하거나 헤어져서 홀로 아이를 키웁니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 사람들은 외국인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이웃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가려는데 성당을 지키는 경비원이 제게 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노숙자 여성을 소개시켜 줬습니다. 그녀는 본인 상황을 감추려하기보다는 한국인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더군요. “혹시 한국인 아이들을 위한 혜택이나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대내외적으로 코피노 지원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눈치였습니다. 특히 제가 한국인 신부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당연한 듯 우대의 손길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볼모로 혜택이나 도움을 받으려는 얄팍한 생각을 가진 그 자매를 보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도시 빈민지역에 있는 공소에서 미사가 있어 평소처럼 미사 준비를 하고 있던 중 한 나이 든 자매님이 다가와 대뜸 “죽은 내 사위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사위가 한국인이라 신부님이 기도해주시면 좋을 듯해서…”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이름은 어떻게 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여쭤봤습니다.

 

하지만 그 자매님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딸이 잘 알거라며 딸을 불러오겠노라 하셨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그 자매님 딸이 1살이 채 안된 신생아를 안고 성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20대 초반의 앳되고 귀여운 얼굴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남편의 사망 소식에 놀란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남편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그 여성은 남편을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됐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동거를 하다가 지금 이렇게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남편은 “미안하다. 보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며 밤새 울먹이다가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의 가족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갑작스런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정황상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싶어 딸과 어머니에게 더 자세히 물었습니다. “혹시 남편이 또 다른 가정이 있는 사람인가요? 그 사실을 알고도 남편과 동거를 했나요?” 그녀는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사연을 들으면서 문뜩 코피노 가정에 관련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한국인 남자가 필리핀 여성과 관계를 끊기 위해 자신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절연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니 제 안에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더구나 남편의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을 위해 사제로서 미사를 봉헌해야 했습니다.

 

미사를 마친 후 사제관에 돌아와 다른 신부님들과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그 자매의 사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얘기가 끝나자 조용히 듣고 계시던 몇몇 신부님들께서 뜬금없이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왜 자네가 화를 내고 있나?” “신부님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혼인 한국인 남자가 미성년자를 상대로 이렇게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다른 신부님이 다시 재차 물으시며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왜 자네가 화가 나는데? 한번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첫째 양쪽 모두 동의 하에 벌어진 일이고, 필리핀 여성과 그 부모 또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인을 이용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필리핀 여성만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것 같네. 둘째 감정을 담아 필리핀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네.”

 

이 사례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과연 이런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요? 가난한 이들이 절대적 빈곤 앞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 이런 지독한 가난의 현실을 생각하니 한동안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 던졌습니다. 필리핀 여성 한부모와 그 아이는 과연 피해자일까? 아니면 가해자일까? 사제로서 그들에게 신앙 안에서 어떻게 다가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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