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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3-22 17:58:11 댓글: '0' ,  조회 수: '1442'

산 위의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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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그레고리오) 신부



수도 리마에서 버스를 타고 25시간 달리면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쿠스코(Cusco) 지역이 나오는데,
저는 그곳으로부터 2시간 반 거리에 있는 야나오까(Yanaoca) 마을에서 4년째 살고 있습니다.
한라산 높이의 두 배쯤 되는 해발 약 4,000m 지역이며, 주민 대부분은 잉카 원주민입니다.

겸손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 비록 가난하고 고단한 현실이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며
순수한 신앙을 지켜 가는 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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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라 2014년에 이곳으로 올라왔을 때, 저도 신고식을 단단히 치렀습니다.

일주일 내내 토하고,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 때문에 잠 한숨 못 잤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하였지만, 일이 있어 산 아래에 내려갔다 돌아오면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
그래도 이제 하루 이틀 쉬면 회복되니 괜찮습니다.

이곳의 외국인 선교사들에게는 지병이 하나씩 있는데 저는 고혈압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신자들과 함께 공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몹시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며 운전하고 있었는데, 순간 고혈압 증세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 보니 차는 오른쪽 산 절벽에 부딪혀서 멈추어 있었고, 왼쪽은 낭떠러지였습니다.

정신을 잃는 순간에 왼쪽으로 차를 틀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차는 크게 망가졌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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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당이 관할하는 지역에는 본당 6개와 공소 100곳 정도가 있습니다.

면적은 서울의 3배 정도이지만, 사제가 부족하여 매 주일미사에 공소를 방문하는 것이 어려운 형편입니다.

신자들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영성체할 수 있도록 그중 70여 개 공소를 부지런히 다니고 있습니다.

몇십 년 만에 신부가 방문한 공소가 있고, 어떤 곳은 100년 만에 찾아간 곳도 있습니다.

신자들은 저희를 기다려 주고 뜨겁게 환영해 줍니다.


사제의 손을 잡고, 제의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치유가 되고 축복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복음을 들을 때의 반짝이는 눈빛,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영성체하는 아이들, 백발의 할머니가 성체를 받아 모시고

해맑게 좋아하시는 모습은 제 마음을 기쁨과 감동으로 채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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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산 곳곳마다 흩어져 띄엄띄엄 집을 짓고 가축을 방목하고 밭을 일구며 삽니다.

멀리 떨어져 살아서 만나기 힘든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 본당에서는

25년 전에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성당 이름을 딴 ‘성 야고보 성당 FM 방송국’입니다.

산악 지역에다 소외된 곳이어서 통신 기반이 굉장히 열악합니다만 흥미롭게도 주민들 모두 라디오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라디오로 하루를 시작하고 라디오로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새벽 4시에 복음 봉독과 묵상으로 첫 방송을 시작합니다. 성서 말씀 묵상, 미사의 강론도 전합니다.

마을의 행사, 사건 사고 소식도 나누며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면

서로 걱정해 주고 기도해 줍니다.

 “○○마을에서 아이를 잃어버렸어요. 아이를 찾아 주세요, ○○할머니의 생일입니다. 축하해 주세요.” 등등

청취자의 사연도 보내 줍니다. 페루 전통 음악 방송도 인기가 좋지요.

사람들은 라디오를 듣고 공통된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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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방송은 원주민의 언어인 케추아어로 하는데, 스페인어는 페루의 공용어지만,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어는 교육이나 사회제도 안에서 통용되므로 소외 계층에 대한 차별이 심한 페루에서는

교육받을 기회가 적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과 어린아이의 경우 케추아어만 쓸 수 있습니다.

청취자들을 배려하여 방송에서는 쉬운 말로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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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시절, 페루에서 2년여 동안 실습을 할 때, 이곳 쿠스코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었는데, 페루에 파견된 지 3년 만에 저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각자 선교의 방식은 다른데 저에게 있어 선교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고,

이곳 야나오까 산 위의 마을에서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힘들 때가 많지만,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 사제관에 들어와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 찾아옵니다.

‘이곳이 체질인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요.


선교를 시작했을 때의 그 첫 마음을 늘 기억하려고 노력하면서 겸손하게

저를 하느님께 내맡기는 선교사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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