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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6-09 15:22:13 댓글: '0' ,  조회 수: '58'

 

우연한 자전거 여행

석진욱(안토니오) 신부

 

집 근처 미라클홈아이들과 예수회 올리버 신부와 함께 6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미라클홈은 수녀회가 운영하는 곳으로 소년원을 다녀왔거나 여러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곳이다. 올리버 신부가 이곳 아이들과 함께 매년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듣고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나도 참가하게 되었다.

 

출발하는 날, 들뜬 마음으로 여행 장비와 자전거용 옷과 신발을 챙겨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모두 일상복에 운동화를 신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올리버 신부는 낡은 반바지에 면 티셔츠 차림이었다. 나 혼자만 너무 차리고 간 것 같아 부담스러우면서도 다들 저렇게 입고 6일 동안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자전거 타기에 좋은 날씨가 이어졌다. 낮에는 해안도로를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와 산들을 보며, 중간중간 쉬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 있게 가긴 했지만, 오후가 되면 바람이 많이 불고 춥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는 도중에 중간중간 멈추어 서서 뒤처지는 아이들도 챙기고, 이야기를 걸어보면서 조금씩 친해지려고 노력했는데, 3, 4일이 지나자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아이는 쉬는 시간에 사탕이나 초콜릿을 계속 주기도 하고, 어디 갈 때 자기 물건을 꼭 나한테 맡기는 아이도 있었다.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거칠기는 하지만 착하고, 누구보다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었다.

 

매일 낮 동안 자전거로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면, 저녁 식사를 하고 미사를 드린 다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일과였다. 나눔하기 싫어하는 건 어느 나라 아이들이나 다 똑같다. 피곤하고 배도 부른데 나눔을 하라고 하니 아이들은 귀찮아 죽을 맛이다. 그래도 올리버 신부의 말에 고분고분 잘 따랐다. 아이들은 나눔 시간에 피곤해 죽겠어요”, “오늘 누구 때문에 힘들었어요”, “꽃이 참 예뻤어요”, “힘들어도 참고 달렸어요등등 짧은 한 문장으로만 이야기했지만, 언젠가 그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좋았던 점을 이야기할 때, 내가 추위에 벌벌 떨면서 자전거 타다가 도착해서 샤워기의 뜨거운 물을 맞던 순간이 너무 좋았다.”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자기들도 그랬다며 웃고 난리가 났다. 짧지만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올리버 신부의 말이 깊이 이해되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아이들은 여느 중고등학생들과 다름없어 보였다. 밝고 쾌활했기에 미처 짐작하지 못했는데, 이곳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갖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방치되거나 학대받고, 범죄와 약물 중독에 노출된 아이들도 있었다. 가슴 한구석에는 아픔과 슬픔이 있겠지만 그것을 숨기고, 아니 숨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괜찮은 척 쾌활한 척했다. 한 원주민 아이는 일행 중 가장 어리고 귀여워서 많이 챙겨 주려고 했는데, 표정이 없고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도 그 아이만 멀리 떨어져 앉아 혼자 밥을 먹곤 했다. 아이는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고, 그래서 타인, 특히 성인 남자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 아버지 역시 가정폭력의 희생자였고, 자신이 받은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자식에게 대물림 한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미라클홈에 와서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누구보다 자전거를 잘 타서 항상 선두를 유지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나와도 조금 친해졌는지 식사 때 옆으로 와서 사랑해요를 한국말로 어떻게 하냐며 배시시 웃는데, 참 사랑스러웠다. 올리버 신부는 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은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이들과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미사 때 하는 응답을 모두 잘 따라 하길래 신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올리버 신부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에게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고 알려 주고,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올리버 신부는 대만에서 30년을 살면서 여러 가지 사목을 하였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며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한 사목을 하고, 또 그들에게 더 전문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제 막 사제의 삶을 시작하는 나에게 올리버 신부는 선교사의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인지 올리버 신부의 낡은 티셔츠와 반바지, 운동화가 내가 입고 간 근사한 옷들과 신발보다 더 멋있고 아름다워 보였다.

 

**석진욱(안토니오) 신부

골롬반회 사제로 20172월 서품되었다. 그해 9월 대만으로 파견되어 언어 공부를 하였으며, 올해 11부터 대만 신주교구 원주민 본당에서 사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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