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

2011-08-11T13:59:10+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1-08-11 13:59:37  조회 수: ‘6039’

* 아래 기사는  가톨릭 신문 이주연 기자의 [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유럽 수도원 순례] 유럽 선교의 교두보, 아일랜드(하) 기사 중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관련 내용만 발췌하였습니다.

발행일 : 2011-08-14 [제2758호, 12면]
[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 유럽 수도원 순례] 유럽 선교의 교두보, 아일랜드 (하)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에서
한국서 활동한 은퇴 선교사 만나 “감동”

P2758_2011_0814_1205.jpg
▲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 전경.

아일랜드의 날씨는 ‘비’를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연 강수량이 약 100cm라는데, 가장 건조한 곳도 일년에 150일 정도 비가 내린다. 어느 지역에서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비와 관련된 용어나 유머도 많다. 이를테면 이곳에서 ‘부드러운 날(soft day)’은 비오는 날을 의미한다. 또 내리는 비를 ‘햇볕이 액체로 내려온다’(It’s liequid sunshines)고 표현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햇볕에 대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는 부분 같았다.

더블린에서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가 있는 나반으로 향할 때에도 흐렸다가 비가 내렸다 그쳤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더블린 북서쪽 방향, 버스로 1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나반(Navan) 지역의 ‘달간 파크’(Dalgan park)에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50여만 평 규모의 푸른 초원 위에 모습을 드러낸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 최근까지도 총 본부 역할을 했으나 이제 그 자리는 홍콩으로 넘기고 지역 센터로서의 임무를 맡고 있다.

건물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60~70년대까지 200여 명 규모의 신학생 양성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그 크기와 활동상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는 40여 명이 거주하면서 은퇴 선교사들의 요양원으로, 또 신자들을 위한 교육 피정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약한 비바람이 흩날리는 짙은 회색빛 날씨 속에 순례객들은 우선적으로 선교회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몇몇 은퇴 선교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 순례객들을 배려, 제대 앞에는 한글 성경 액자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로 먼 이국땅 한국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다 이제는 고국에 돌아와 있는 초로의 선교사들은 한국 신자들과 함께 모처럼 한국어 미사를 봉헌하며 그때의 선교 시절을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성당 뒤편 한쪽 벽면에는 특별히 24명의 선교사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한국전쟁때 희생된 7명의 선교사를 비롯 전 세계 선교지에서 순교한 회원들이다. 이들의 죽음에 맞선 신앙이 있었기에 한국교회를 비롯 아시아 남미의 여러 교회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삼 하느님 안에 일치를 이루게 하는 그 신앙의 도움과 하나됨의 신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P2758_2011_0814_1202.jpg
▲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회원 묘지. 한국에서 선교한 회원들을 비롯 골롬반 선교회 회원으로 활동한 이들이 묻혀있다 .

선교회 건물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골롬반 회원들의 묘지를 방문했다. 몇몇 비석위에 흩날리는 하얀 리본들. 한국에서 선교한 이들의 묘지를 알리는 표시였다. 한국 신자들의 방문 소식에 선교회측이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춘천교구장을 지냈던 박토마 주교의 묘지 등을 둘러보며 마음이 애잔해졌다. 익숙함을 떠나 하느님의 자비 사랑을 믿고 낯섦의 역사 안으로 뛰어들었던 선교사들의 생애가 영화 필름을 보듯 머릿속에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한국교회 안에서 나눠진 그들의 희생과 봉사의 역사를 마음 안에 담으며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원주 광주 부산 인천 교구 등에서 선교했던 브렌단 호반 신부가 버스에까지 올라 배웅 인사를 했다.

이글을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