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이시돌 자연 피정에 다녀와서…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0-09-03 13:09:31  조회 수: ‘6381’

** 아래 글은 가톨릭신문 제2712호(2010.9.5 연중 제 23주일)에 실린 글입니다. **

 

“주님의 발은 제가 씻어 드릴게요”

제주 이시돌 자연 피정에 다녀왔습니다. 1954년 제주 한림본당에서 첫 사목을 시작하신 아일랜드 출신 임피제(P. J. Mc Glinchey) 신부님. 그분은 제주 사람들의 가난을 구제하고자 성당 구석에서 돼지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하셨다지요. 그것이 씨앗이 되어 오늘날 한라산 기슭에 거대한 이시돌 목장까지 일구셨고, 노인?젊은이?어린이를 위한 복지 시설과 신자들의 영성을 위해 피정의 집까지 세우셨으니 그동안의 노고가 오죽하셨을까요.

전시관에서 반세기 역사를 둘러보며 살아있는 성인을 만났고, 대자연 속 ‘새미 은총의 동산’에 올라 조형물로 이루어진 예수의 생애 공원에서 주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더 높이 산등성이를 따라 실물 크기의 청동 조각으로 형상화된 주님 수난 14처 곳곳에서 눈물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고,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 넓은 호숫가에 이르러 하늘로 오르시는 주님을 뵙고 환호했습니다. 인도자의 손짓을 따라 높이 허공으로 눈길을 돌리니, 아! 푸른 나무 숲 속에 하얀 옷 입고 떠오르는 주님의 모습! 주님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호숫가에는 드문드문 화양목이 서 있었는데, 모두 동글동글 묵주 알 모습으로 이발을 하고 있었어요. 둘째 날 밤 야외 미사 후 촛불을 들고 그 호숫가를 돌며 합창으로 바친 묵주기도는 은혜로웠습니다. 아니, 저는 그보다 더 은혜로운 일을 만들고 왔답니다.

둘째 날 새벽이었어요. 5시도 못되어 잠에서 깬 저는 전날 본 은총의 동산을 더듬더듬 찾아 주님 생애 공원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았지요. ‘마구간에서의 탄생’을 시작으로 마지막 ‘최후의 만찬’까지 열 두 장면이었어요. 실물 크기의 조형물 덕분에 저는 곳곳에서 주님의 제자단과 함께하는 착각을 누렸습니다. 특별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 장소에서는 한참을 서서 묵상하다가, 쪼그리고 앉아 계신 주님 곁으로 다가가 “주님의 발은 제가 씻어 드릴게요.” 하면서 흐르는 도랑물을 손으로 떠서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14처 입구 겟세마니 동산에서는 홀로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 손을 잡아드리고 계속 14처를 돌며 주님 수난에 동참했습니다. 청동 조각이 어찌나 현장감을 자아내는지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특히 성모님과 만나는 4처에서는 더더욱! 새벽녘, 혼자 누린 이 은밀한 감동을 저는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감동은 그뿐이 아닙니다. 도착 첫날 밤 미사 때 초록빛 제의를 입고 들어서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고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머리에 새하얀 명주실 머리카락을 엉성히 달고 큰 체구에 허리 굽고 등 굽은 83세의 노 사제! 오직 복음을 전하고자 이십 대 푸른 나이에 낯설고 말 설은 이역만리로 건너와 반백년을 사신 그분 모습에서 문득 주님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강론 말씀도 가슴 깊이 박혔어요. ‘주님께서는 서로 좋아하라는 말씀은 안 하셨다.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랑은 의지요 결심이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좋아하지 않아도 의지로 결심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 일은 가정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 그 다음 이웃으로 번져가야 한다. 혼자 힘으로 못하니까, 늘 기도하고 겸손을 청하면서 실천해야 한다’는 요지였지요. 그래요.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잘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지요. 그러니 성령의 도움 없이 신적 사랑이 어찌 가능할 것인지요.

교우들의 찬미가 속에 주님 손발 붙들고 드린 ‘떼제 기도’며 자신들의 손을 바라보고 드린 ‘손 묵상 기도’도 영혼을 적셨지요. 전체적으로 ‘이시돌 자연 피정’이라는 명칭대로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비교적 여유로웠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족끼리 온 팀이 많았어요. 특별히 사촌들까지 대부대가 참석한 가정도 있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 온 가족이 피정 장소에 함께 모여 우애를 다지는 것도 뜻있는 일이겠지요? 3박 4일 동안 축복의 땅으로 초대해주신 주님. 감사, 감사합니다.

By |2010-09-03T13:09:03+09:002010-09-03|보도자료|[가톨릭신문] 이시돌 자연 피정에 다녀와서…의 댓글을 껐습니다
Go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