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비타꼰]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2012-03-29T16:53:44+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2-03-29 16:53:12 댓글: ‘1’ ,  조회 수: ‘6785’

*** 아래 글은 2012년 4월호「가톨릭 비타꼰」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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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_20120327_1.jpg한국진출 80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파란 눈의 사제들이 있었다. 그들은 맑고 순박한 한국인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가난한 한국을 사랑했다. 그리고 평생 선교사로 헌신하다 한국에 스스로의 영혼을 묻었다. 은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제들은 선종하기 직전까지 한국을 잊지 못했다. 이들에게 한국은 고국이자 고향이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지부장 오기백 신부) 신부들, 벌써 80년 째 한국 사랑앓이다. 1933년 총 10명의 파란 눈의 사제들이(아일랜드 9명, 미국 1명) 한국에 들어온지 벌써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랑이 없었다면 보내기 힘겨웠을 시간이다. 이들의 한국 선교는 그만큼 인내의 시간이었다. 1941년 12월 8일에는 적성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일본인들에게 체포됐다. 이듬해에는 호주, 미국, 뉴질랜드 출신 7명의 사제들이 본국으로 송환됐고, 아일랜드 신부들은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기도 했다. 가택 연금 상태에 있던 길 헨리 신부는 이질에 걸렸어도 약을 쓰지도 못하고 1945년 선종했다.

제주도에서 사목하던 3명의 골롬반 신부들은 더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들은 제주에서 첩보활동 및 불온사상 소지자라는 죄목으로 1941년 체포되어 손 바드리시오 신부는 약 3년, 서 아오스딩 신부는 2년, 나 토마 신부는 1년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골롬반 신부들에게 6.25전쟁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형제를 잃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같은 해 6월 27일 사살돼 외국인으로서는 첫 희생자가 됐고, 진 야고보 신부는 7월 4일, 나 바드리시오 신부는 8월 29일에 각각 강원도에서 총살당해 순교했다.
대전에서는 고 토마스 신부, 안 바드리시오 몬시뇰, 오 요한 신부가 9월 24일 죽임을 당했다. 구 토마 신부와 조 필립보 신부는 북한 지역 포로수용소에 끌려가 다시 돌아오기 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950년대 이후 골롬반 신부들의 관심은 소외된 이웃이었다. 소록도, 진도 등 지역에서 한센병환자 공동체 시설을 건립한 것도 이들이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줬고, 도시 빈민들의 곁에도 함께 했다. 그동안 한국으로 선교 온 성골롬반선교회 사제들은 총 257명, 지금까지 선종한 사제 수는 113명에 이른다. 그 중 23명은 한 평생 사랑했던 한국에 묻혔다. 이들이 세운 본당 수만 서울, 광주, 춘천 교구 등에 총 130여개다. 한국 천주교회에 처음으로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한 것도 이들이었다. 오는 10월 29일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한국진출 80주년을 맞는다. 기나긴 세월만큼이나 이들은 어느새 뼛속까지 한국인이 됐다. 이름까지 한국식이다. 좋아하는 음식도 한국음식이다. 그만큼 이들은 한국을 사랑했다. 그들의 헌신은 한국천주교회에 씨앗이 돼 많은 한국인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했다. 사랑은 전염성이 강하다. 이제 그 사랑을 배운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해외로 나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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