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가 되어

2013-12-09T15:30:12+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3-12-09 15:30:02  조회 수: ‘6285’

*** 아래 글은 2013년 「경향잡지」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가 되어

 

 

글_배봉한 편집장 ipse@cbck.or.kr
사진_김민수 기자 yesican@cbck.or.kr

 

 

20131206_1.jpg

골롬반회는 인구의 95%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에서 1916년 에드워드 갈빈 주교 와  존 블러윅 신부가 중국 선교를 목적으로 창설한 국제 선교단체이다.
이들은 아일랜드 출신의 골롬반 성인(540~615년)처럼 고국을 떠나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가 되어, 현재 15개 나라 다른 문화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정의를 위하여 일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1933년 10월 29일

 

1931년 일제치하에서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행사와 한국 지역 시노드가 열렸다. 여기서 대구대목구장이던 파리외방전교회의 드망즈(한국명 안세화) 주교는 전라도 감목대리구를 분리하고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에 다른 선교회가 이 지역을 맡아주기를 청했다. 포교성성의 제의를 받은 골롬반회는 1932년 총회에서 중국 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선교를 할 것을 결의하였다. “1933년 10월 29일 주일 이른 아침, 골롬반 선교사 10명이 부산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아일랜드, 호주, 미국에서 왔는데, 각자 고국에서 출발해 중국에 도착, 다시 중국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온 것입니다. 그날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고,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들은 바로 기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해 파리외방전교회 안세화 주교님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오기백 신부가 선교회 계간지인 「골롬반선교」 2013년 가을호에 쓴 글이다. 이렇게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서 6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운 선교사들은 1934년 부활대축일 아침,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하려고 대구를 출발해 목포로 떠났다.

 

그로부터 8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266명의 골롬반 선교사제들이 이 땅 곳곳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기자간담회에서도 언급한 그 세월을 오 신부는 다시 이렇게 간추려 적고 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1941년 미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온 선교사들이 추방당하고, 아일랜드 선교사들은 강원도 홍천에서 가택연금 당했으며, 제주에 있는 분들은 간첩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한국전쟁에서는 7명의 선교사가 순교했고, 2명은 3년 동안 북한에 포로로 끌려가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여 1999년 한국정부는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항일운동을 한 3명의 아일랜드 신부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외국인 사제가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래도록 영국의 지배를 받고 남북분단으로 끝난 내전을 겪은 아일랜드인들이라 식민지의 한, 전쟁의 고통 등 한국인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으리라. 요즘 유행어처럼 “느낌 아니까~.”

 

 

20131206_2.jpg


▲ 1933년 10월 29일 입국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10명의 선교사들(앞줄 가운데는 드망즈 주교)

 

 

시대의 징표를 읽은 혜안

 

1950년대와 1960년대는 100여 명이나 되는 젊은 골롬반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전쟁 후의 한국교회 재건과 본당 개척에 앞장섰다. 1953년 원 요한 신부는 목포 산정동본당에 레지오 마리애를 최초로 도입하였고, 임 파트리치오 신부는 제주도에서 가난을 몰아내려고 목축업을 장려하였다. 1957년 광주대목구의 주교가 된 현 하롤드 대주교는 1962년 박 토마스 주교가 춘천교구장으로 서임되어 골롬반회는 광주와 춘천교구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한국에 들어온 사제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으로 새로운 사목을 시작하려는 과정에서 선배들과 갈등과 긴장이 생기기도 하였다고 오 신부는 고백한다. “일부는 새로운 특수사목 분야로 옮겨가려 하고 다른 이들은 전통적인 본당사목을 수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군부독재시절에는 인권옹호를 위한 노력이 골롬반 회원들 사이에 긴장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골롬반 회원들은 노동자, 학생, 병원사목, 도박 중독자 또는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사목, 행복한 가정운동(ME), 상담, 영적 지도와 피정 등 새로운 선교를 꽃피우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1982년 세계총회에서는 지역의 지원자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여, 한국인 회원들과 함께 국내외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는 선교회로 거듭났다. 이어 1988년 세계총회에서 평신도 선교사들을 양성하고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백인 선교사제로만 구성되어 있던 선교회가 현재는 일곱 개 국적을 가진 다양한 선교사들이 함께하는 다국적 공동체가 되었으니, 다문화 사회로 바뀌어가는 시대의 징표를 읽은 혜안과 섭리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1994년 피지와 대만으로 파견됭ㅆ던 10명의 평신도 선교사 가운데 20대의 젊은 임연신 엘리사벳 씨가, 피지 선교 중 풍토병으로 목숨을 잃어, 선교지에 묻힌 최초의 한국 골롬반 회원이 되었다. 교구 사제 가운데도 1996년 박은종 신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7명의 골롬반 한국 지원사제를 선교지로 파견했고, 현재 8개 교구 소속 11명의 지원사제가 필리핀, 칠레, 페루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10월 29일

 

10월 29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골롬반회 한국 진출 80주년 기념 개회미사가 봉헌되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주교는 골롬반회의 공로를 열거하고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 하며 교우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부탁했다. 멈추라는 말이 나오고서야 비로소 그친 길고 긴 박수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 퍼졌다.

 

선교사들이 선교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영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회원들과 은인들은 물론, 가장 먼저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희생이 있다. 이날 미사에서 제2독서 대신 읽은, 골롬반회 공동 창설자 에드워드 갈빈 주교의 편지가 모든 선교사들의 마음을 대변한 듯 하였다. 선교지로 떠나며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런 편지를 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 뜻이 아니고 주님의 뜻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 이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이 부르셨으니 그분의 부르심에 따라야 합니다. 저는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선교사로 중국에 가야 하니까요…. 하느님은 아실 것입니다. 제 자신 때문이 아니라 제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찢겨질 듯 아프다는 것을….

어머니, 당신은 알고 계시지요. 제가 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음을. 사실 저는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 어린 시절의 일시적인 기분이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나이를 먹으면 잊힐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결코 잊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중국이라는 대륙을 향해 떠납니다. 어머니, 저는 중국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주님과 함께,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그분에게 소중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떠납니다.”

 

선교사들이 처음 도착했던 부산항의 물과 첫 사목을 시작한 목포 산정동성당의 흙, 선교지로 떠남과 도착을 의미하는 짚신 등의 상징물 봉헌도 인상 깊었다. 칠레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골롬반회 한국인 첫 사제 김종근 도미니코 신부가 오래전 휴가차 귀국한 길에 결연히 고백한 말이 떠올랐다. “태어난 곳은 제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했지만, 제가 죽을 곳이 어디인지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1933년 10월 29일 첫 선교사가 입국하던 그날처럼, 80주년 기념 개회미사를 봉헌한 이날도 가을비가 내렸다. 80년의 선교역사를 증언하는 기념 전시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다과를 나누었다. 오래된 흑백사진 속의 인물들을 눈여겨보며,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이 땅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해 온 선교사들과 이 땅에 묻힌 스물 세 분의 선교사들을 위해 두 손을 모으고 추억을 갈무리했다. 가을비 탓인가? 선교열정과는 거리가 먼 방랑기가 분명하겠지만, 어디론가 문득 떠나고 싶은 어스름 저녁이었다. 골롬반회 80주년 기념행사는 내년 예수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인 4월 27일, 첫 선교지인 목포 산정동성당에서 드리는 미사로 끝이 난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골롬반 가족들과 함께 봄비 속으로 달리는 목포행 기차를 타고 싶다.

 

 

20131206_3.jpg

이글을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