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주보] 초대,제3대 교구장을 지낸 임 맥폴린 몬시뇰 신부님 글

2009-08-17T09:54:53+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8-17 09:54:18  조회 수: ‘6609’

** 아래 글은 사제의 해 특집으로 광주주보 제1542호(2009.8.16 연중 제 20주일)에 실린 글입니다. **


세상을 떠난 교구사제의 발자취

초대 제3대 교구장을 지낸 임 맥폴린 몬시뇰

임 맥폴린(McPolin Owen, 1889-1963) 문시뇰은 1889년 아일랜드 힐타운(Hill-town)에서 태어나 1907년 드로모어(Dromore) 교구 메이눗(Maynooth)의 세인트 패트릭(St. Patrick)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1913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해외 선교를 주목적으로 하는 골롬반회의 사목 방침에 따라 1920년 동료 신부들과 함께 중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약 13년 동안 중국 사목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당시 대구 대목구의 드망즈(F.Demange)주교는 전라 감목 대리구의 교세가 확장되자 전라남도 지역이 교구로 설정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신자 수와 여러 가지 여건이 부족하여 골롬반회에 위탁하였다. 이에 맥폴린 신부를 비롯한 10명의 선교사가 1933년 10월 29일 처음 대구에 도착하여 약 5개월 동안 한국어와 풍속을 익힌 후, 각각 나주․ 순천․ 제주․ 광주 등지로 파견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4년 4월 맥폴린 신부는 전체 신자수가 전라남도 총 신자수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목포에 부임하여 골롬반회 한국 본부를 설치하였다.

1934년 5월 10일 전라남도 감목 대리구가 설정되자 감목 대리로 임명된 맥폴린 신부는 골롬반회 본부에 보다 많은 선교사들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10명의 선교사가 새로 입국하여 모두 21명이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맥폴린 신부는 1937년 4월 13일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사목 관할 지역으로 하는 광주 지목구가 설정되자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는 동시에 몬시뇰 칭호를 부여 받았다. 당시 전남 지역의 본당은 9개, 신자수는 3,567명이었으며, 한국인 3명을 포함한 24명의 사제들이 사목하고 있었다. 지목구장인 맥폴린 몬시뇰은 목포 산정동 본당에 교구청을 두고 상주한면서 교세 신장 및 교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당시 한국을 식민 통치하고 있던 일본에 의해 그를 비롯한 골롬반회 소속 신부들은 준적성국(準敵性國)국민이라 하여 혹독한 종교 탄압을 받았다.

결국, 골롬반회 회원들은 체포되어 나주에 구금 되었으며, 광주로 이송된 후에도 사제관에 감금되었다. 몇 개월 후 풀려난 맥폴린 몬시뇰과 동료 선교사와 한국인 신부들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목 활동을 재개하였으나, 일제는 한국 교회를 일본인에게 맡기기 위해 맥폴린 몬시뇰에게 사직 압력을 가하였다. 계속되는 일제의 강압에 따라 결국 강제로 지목구장직을 사임하게 된 맥폴린 몬시뇰은 1945년 4월 본국으로 돌아갔다. 일본의 패전으로 한국에 재입국한 맥폭린 몬시뇰은 다시 제3대 광주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일제에 의해 파괴된 교구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다. 1947년 10월 본국으로 돌아가 골롬반 대신학교와 골롬반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0년 달간 파크 대신학교로 전임되어 후학을 양성하다, 1963년 2월 28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달간 파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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