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소 여정에 대해 – 박요섭 요셉 신학생

올해부터 성소국에서는 성소과정을 거치고 입회심사를 마쳐 현재 신학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생생한 후기를 실을 예정입니다.

이 후기들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선교사제의 삶의 시작을 알 수 있고 사제 성소가 일시적 호기심이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하느님의 계획과 부르심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의 성소 여정에 대해 – 박요섭 요셉 신학생

안녕하세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학생 박요섭 요셉입니다. 저는 골롬반회에 2015년에 입회하였고 현재 서울 신학교 6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저의 선교사제로서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2007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말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깊은 하느님 체험을 하였습니다. 회심의 눈물, 충만함, 기쁨 등의 단어들로 표현해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거나 뒷산에 올라 하느님을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고 다른 선교회 사제인 사촌 형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시에 제게 ‘성소’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였으며 ‘선교’에 대한 이해도 전무하였습니다. 그저 체험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외방 선교사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접하였는데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외방 선교사가 된다면 체험을 통해 느꼈던 충만함과 행복을 계속 느끼며 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처음엔 다른 선교회에 입회하였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성찰과 저의 약함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탈회하였습니다.

그 후 골롬반외방선교회에 들어오기 전까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몇 군데의 공동체를 거쳤지만 그 시간은 외방 선교에 대한 이해나 체험을 구체화시켰던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낮은 자존감과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로 인한 개인적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 강렬했던 하느님 체험이 있었지만 체험 자체가 저의 내면을 자동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체험이 선교사로서의 열망을 계속 가지게 하였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외방 선교’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었습니다. 

골롬반회에 들어오기 전 어떤 한 선교회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때 마음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 선교회 또한 좋은 선교회이지만 저는 더 제대로 된 양성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저 외적으로 선교와 신학을 알고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선교 사제가 아니라 막연한 느낌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내면으로부터 선교 사제이고 싶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한 수녀님과 오랜 기간 나눈 끝에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성소 담당 신부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몇 개월의 기도와 고민을 한 뒤에 기존 선교회를 탈회한 후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성소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성소모임을 다니면서 지난 시간 동안 제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왔는지 또 하느님께서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에 대해서 성찰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려는 제 원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강한 체험과 끌림에 따라갔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갈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왜 이 부르심에 응답하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었습니다. 체험은 항상 쇄신되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신학생이 된 후, 이곳에서 양성을 받으며 약함과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갔습니다. 그 과정은 매우 치열했고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살아남기 위해 쓰고 있던 가면을 벗는 과정 즉,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과정에 있겠지만 제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저의 가치관과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서 다른 사람 입장도 생각해 보게 되고 나와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가게 됩니다. 조금씩 사람다워져가면서 내적인 자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의 약함이나 강함의 문제를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조금씩 체험하게 되면서 저는 변화되어 갑니다. 30일 피정을 하던 어느 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그분께서는 저의 모든 기쁨, 아픔 등을 온전히 그대로 함께 느끼시는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크나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그분의 그런 사랑을 닮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제 감정대로, 본능대로 살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그 너머를 가자고 초대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극히 일부분을 체험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각자의 방식대로 부르십니다. 서로가 만나는 하느님이 함께 모이면 더 크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소는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매 순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향해 와달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근본적인 성소이고 부르심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 나 자신이 어느 길에 서 있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바라보려고 합니다. 불편함이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불편한 감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다른 선택을 하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부르심은 성령의 일이십니다. 성령의 일인지 아닌지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매 순간 행복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 모두가 받는 성소의 길은 영적 투쟁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응답할 때 맺어지는 열매에는 내적인 깊은 행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선교 사제의 길은 전혀 새로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길의 생김새가 다를 뿐입니다. 선교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한 신부님이 선교를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선교는 하느님의 숨과 같다. 들숨과 날숨. 생명이 전달되고 유지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숨결이 전달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셔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같은 숨을 부여받은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들입니까? 선교 사제는 모든 피조물이 사랑받는 존재이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연결 고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방 선교사는 특별히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하나로 엮으며 똑같은 하느님 자녀로서의 충만함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지에 가서 제가 만난 하느님을 전하기보다는 이미 그곳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사랑에 감화되어 일치의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By |2021-05-04T16:21:09+09:002021-05-04|골롬반 소식, 성소국, 성소국 소식|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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