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나의 행복나무 가지치기

2012-09-27T19:31:56+09:00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2-09-27 16:19:58 댓글: ‘0’ ,  조회 수: ‘13699’

***** 아래 글은 「생활성서」 10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

 

 

나의 행복나무 가지치기

 

박정호 _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한국의 뉴스에 이곳 칠레의 일부지역에 지진이 났다고 나왔었나 보다. 회의가 있어 다른 지역에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오는 사이 가족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연락을 해 왔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전화를 받지 못해 많은 걱정들을 하셨다. 사실 우리가 사는 곳과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이라 지진을 느낄 수도 없었지만, 느꼈다 하더라도 이번과 같은 약한 진동 정도는 수시로 겪으며 사는 터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한국에도 몇 년 만에 사상 최대의 태풍이 몰아치면서 이래저래 어르신들의 심기가 적잖이 불편하셨나보다. 아무튼 한국에도 큰 피해는 없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태풍이나 지진처럼 ‘행복’또한 그 크기를 측량할 수 있을까? 가령, 얼마나 깊이 있는 행복을 느끼는가? 얼마나 강력한 행복인가? 혹은 어느정도 기간 동안 지속되는 행복인가 등. 그것을 정확히, 객관적으로 측량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구체적인 통계를 내고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여 행복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리하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행복하게 하는 요소들을 최대한 우리 일상에 접목시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행복을 얻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참 오묘한 것이 행복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얻어지기도 하고, 또 생각지도 않게 우연히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이따금 불행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행복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렇듯 불확실한 행복 앞에서 우리 모두는 그것을 추구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매월 첫째 날은 본부에 한 달 치 생활비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오늘도 늦은 아침을 먹고 함께 따라 나서고 싶어 하는 시우의 간절한 눈동자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아직 오전 시간임에도 냉기서린 아침 공기가 금세 사라지고 햇살이 제법 따스해진 것을 보니 이제는 조금씩 봄이 오려나 보다.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시내에 있는 골롬반 본부로 향한다. 사목지를 벗어나 홀로 시내를 나가는 것은, 선교사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일상을 잠시나마 내려두고 한 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작은 ‘시간의 사치’이자 행복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발걸음이 가볍다.

본부에서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사무실에서 생활비를 받아 나서며 우편함을 힐끗 보니 우편물이 와 있다. 무조건 반가운 「생활성서」잡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 읽어 버렸다. 밥그릇의 밥알을 싸악 긁어먹듯, 가끔씩 만나는 이 한글 덩어리들이 반가워 구석구석 목차까지 다 읽어 버렸다.

책을 덮고 버스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걷는데, 아침과는 달리 발걸음이 터벅터벅 투정을 부린다. 왜? 잡지를 보며 너무나 훌륭하신 분들의 좋은 글들을 읽다보니 문득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곳에서의 반복되는 일상들이 외형적으로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도 않고, 또 내면적으로도 나는 과연 그토록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작은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에잇! 이놈의 저질 자존감! 훌륭한 분들의 삶을 보았으면 거기서 배움을 얻어야지, 그분들과 너를 비교하면 어떡해!” 나름 냉철하다 자부하는 머리가 상처 잘 받는 여린 가슴에게 일갈을 날린다. 하지만 어쩌나. 이해시키기 좋아하는 머리의 위로는 느낌을 잃어버린 가슴에게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전, 어느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경쟁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단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지방 학생들은 서울 학생들에게 콤플렉스가 있고 서울 학생들은 소위 명문대 학생들에게 콤플렉스가 있단다. 명문대 학생들은 그 학교의 1등하는 학생에게 콤플렉스가 있고, 명문대 출신에 수석까지 하는 이들은 자기보다 잘 생긴 이들에게 콤플렉스가 있단다. 이젠 새로울 것도 없는 ‘경쟁사회의 폐단’에 대한 지리한 담론을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그 불행의 쳇바퀴를 과감하게 벗어나 세상의 법칙을 거슬러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어김없이 불쑥불쑥 찾아올 만큼 경쟁신앙의 망령은 강력한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에 관한 의견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한 가지 요소는 확실하다. 그것은 바로 ‘비교’일 것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처럼, 남과의 비교는 무언가 좋은 것, 가치로운 것이 내 안에는 있지 않고 외부로부터만 주어진다는 잘못된 신념을 낳는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 놓고 ‘보시니 좋았다’하며 만족해하신 그분의 창조실력을 폄하하는 것이 된다. 하느님께서 들으시면 참 섭섭해하실 일이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니 “나 는 칠 레 사 람 이 에 요~!”하는 어설픈 발음의 한국말이 들린다. K-Pop에 푹 빠져 사는 이웃집 16살 여자 아이의 간곡한 부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베노니카가 집에서 하고 있는 ‘한국어 교실’이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한다는 것을 단 한 번도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선교의 특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행복은, 우리가 가진 평범한 것들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선교사 생활에서 터득한 나름의 개똥철학이다.

 

* 박정호 선교사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2008년부터 칠레에서 아내 김규희 선교사와 함께 청소년·가정 사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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