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그 빛으로 말미암아_류선종 안드레아 신부

그 빛으로 말미암아

글  류선종 안드레아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2017년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대만에 파견되었다. 현재 신주교구 터우펀 본당에서 주임신부로 사목하면서 이주민 사목도 겸하고 있다.

『골롬반선교』 2021년 겨울호(통권 제120호) 16~17쪽

는 2019년 1월, 이곳 터우펀(頭份) 본당에 주임 신부로 왔습니다. 대만에서 발령받은 첫 소임지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에 서툴렀습니다. 중국어 또한 부족해서 미사를 집전하기 전에 아주 긴 시간 동안 강론을 준비하고 기도문 읽는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반년 동안은 차분히 적응하는 기간으로 보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본당에 여러 사건 사고들이 생겼습니다. 성당 지붕이 무너지고, 교우들 사이에 불화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을 가장 무겁게 했던 일은 십여 분의 어르신 교우분들이 보름 간격으로 계속해서 돌아가신 일이었습니다. 대만에서는 겨울에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시기는 하지만, 마침 제가 부임한 그해 유독 많은 분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물론 제 탓은 아니지만 제가 부임하자마자 여러 부고를 접하니 본당 신부로서 착잡하고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농담조로 “신부는 병자를 살리는 신부와 하느님께로 잘 보내드리는 신부가 있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면서 ‘나는 후자에 속하는가?’ 하는 자조 섞인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성당 지붕이 무너졌을 때 눈앞이 캄캄했지만, 신자분들과 함께 무사히 복구를 완료하였다.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것도 고되었습니다. 대만에는 불교와 도교 신자들이 많은데, 이곳 풍속에 맞게 천주교의 장례 절차 안으로 49재 개념을 차용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장지에 가기 전 장례미사를 드리고, 고별식을 진행하는 한국과 달리, 고인이 돌아가시고 난 후 7주 동안 매주 한 번 혹은 7일 연속으로 고인을 모신 곳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전통이 있습니다. 장례 의식을 주관하는 사제 입장에서는 장례가 한꺼번에 발생하면 매일 위령미사를 드리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약 두 달 정도 거의 매일 위령미사를 드렸습니다. 그야말로 제의에서 향내가 가실 날이 없었던 날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처음 발령을 받아 고인 및 고인의 가족들과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심적으로 부담되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가족들에게 고인에 관해 물었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었습니다.

선종한 어르신을 위해 기도하는 류선종 신부와 교우들

천주교 전례 안에 대만 장례 문화가 들어온 모습이다. ⓒ 류선종 신부

그렇지만, 이처럼 한 가족을 위해 여러 차례 미사를 집전하며 얻는 은총도 있습니다. 매일 혹은 매주 함께 모여 고인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서로 안에서 연민의 정이 싹트고 연대 의식이 생겨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고 장지에서 돌아오면서 진심 어린 인사를 주고받는 가족들을 보노라면, 그 얼굴에서 평화의 기운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한 분의 영혼을 하느님께 잘 보내드렸으니 이제 이분들은 그 힘으로 다시 잘 살아가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류선종 신부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공포와 슬픔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크기에, 죽음을 잘 받아들이고 잘 보내주지 않으면 우리 삶이 온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으로 점철되어 버리고 맙니다. 죽음에 잠식된 삶,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듯 사는 삶은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삶의 의미가 아닙니다. 빛의 자녀인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징표를 받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비록 심적으로 고될지라도 긴 장례 절차를 통해 고인의 가족들이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제가 동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파스카 신비, 부활의 의미를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관할 지역 공소가 최근에 재건되었다. 천사 성당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어느 신자의 봉헌으로 지어졌다. ⓒ 류선종 신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지난 2년 시간에 우리 삶은  장례식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날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겨우겨우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두의 얼굴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로 인한 피로감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신앙인에게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부활의 삶으로 건너감이기에 우리는 죽음을 잘 받아들이고 또 잘 보낼 수 있습니다. 부활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공포로 짓눌린 서로의 마음을 잘 위로해 주며, 언젠가 모든 시련과 공포를 극복하고 살아낼 우리 고유한 삶을 희망하며 이 시기를 잘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아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과 사랑이 여러분 마음을 환히 비추고, 그 빛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공허와 공포 속에서 평화와 안식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By |2022-01-20T15:49:09+09:002022-01-07|골롬반 소식|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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