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이 씬뿌!
글/사진 석진욱 안토니오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대구 출신이며, 2017년 사제품을 받고 그해 대만으로 파견되었다. 현재 원주민 지역인 신주교구 성 미카엘 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면서 이주민·장애인사목을 겸하고 있다.
『골롬반선교』 제126호(2023년 겨울호) 18~19쪽

"아라이"는 대만 원주민 가운데 가장 큰 부족인 아미족의 언어로 "감사합니다"이고, "씬뿌"는 사제를 뜻합니다. 우리 본당 신자 대다수가 아미족이라서 주일 첫 미사는 아미족 언어로, 두 번째는 중국어로 봉헌합니다. 미사 후 인사를 나눌 때 신자들은 중국어로 "씨에씨에 션푸(신부님, 감사합니다)" 또는 원주민 말로 "아라이 씬뿌"라고도 합니다. 그때 제가 "아라이 하니타 코 와마!(하느님께 감사합시다!)"라고 답하면 신자들은 "하느님과 신부님 모두 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다 같이 크게 웃으시곤 합니다.
원주민 본당을 맡으면서 처음 든 걱정은 언어였습니다. 원주민들도 중국어를 공용으로 쓰므로 제가 원주민 말을 따로 배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미사에서 사제가 하는 부분은 중국어로, 신자들의 응답 부분과 독서, 성가는 아미족어로 해왔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하면 큰 어려움은 없겠다고 생각하고 부임 후 첫 미사를 그렇게 드렸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영 어색하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부임하고 두어 달 정도 지났는데도 그 느낌이 계속 이어져서 아미족 말로 미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한번 복음부터 해보자는 생각으로 전례 봉사자에게 도움을 청해서 발음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날 복음이 길지는 않았지만, 원주민 말로 된 복음은 더 길었고 처음이라 무척 긴장했습니다. 복음 시작 전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까지는 중국어로 했기 때문에 신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제가 자기들 말로 복음을 봉독하자 신자들 눈이 커지면서 깜짝 놀라는 얼굴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를 노래로 마치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강론은 중국어로 했지만 신자들이 어느 때보다도 강론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과 인사를 할 때, 예전에는 짧게 인사만 하고 얼른 나가시던 분들도 "아라이 씬뿌, 니 헌빵(정말 대단하세요)" 하며 연신 엄지를 치켜 보여주어 뿌듯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복음을 원주민 말로 읽으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 미사 시작부터 해서 원주민 말로 하는 부분을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룩하시도다" 전까지만 하는데 조만간 미사 전체를 다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하고 나니 주일 첫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 수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주일에는 원주민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고 그들 언어를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실을 운영하는데, 제가 두 번째 미사를 마치고 그 모임에 찾아가면, 맥주 한잔을 제게 건네면서 "신부님, 오늘 복음 읽을 때 발음 너무 좋았어요." 하는 분도 있고, "그건 그렇게 읽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읽어야 해요."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분이 "형제님보다 신부님이 더 잘 읽으시니까, 형제님이나 연습 더 하세요"라고 말해서 함께 크게 웃은 적도 있었습니다.
모든 선교사에게 다른 언어로 미사를 봉헌하는 본당 신자들과 즐거운 한때(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주일학교 어린이 미사에서 강론할 때 것은 특별한 은총입니다.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에게도 중국어가 아닌 모국어로 복음을 듣고 기도하는 때는 특별한 은총의 시간입니다. 제가 그 은총을 함께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제 작은 노력으로 그분들도 저를 조금씩 받아들여 주시고, 교회를 떠났던 분들도 조금씩 다시 돌아오고 있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요즘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선출 직후 첫인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로마) 주교와 (하느님) 백성으로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여정은 사랑으로 온 교회를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의 형제애와 사랑과 신뢰의 여정인 것입니다. 항상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 첫인사 안에 하느님께서 교회에 원하시는 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한 여정"은 "참여"와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저도 미약한 힘이지만 이곳 분들의 문화에 '참여'하고자 언어를 배움으로써 더 깊이 만나게 되었고, 교회로 돌아온 분들과 새로운 '만남'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곳 사람들과 함께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갑니다.
2023년은 골롬반회가 한국에 진출한 지 90주년이 된 해입니다. 오랜 시간 골롬반 선교사들이 걸어온 여정을 돌아보고, 우리 모두 선교사로서 지금 있는 자리에서 형제애와 사랑과 신뢰의 여정을 함께하기를 청합니다. "아라이 하니타 코 와마!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