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 전요한 신부 “술 때문에 한국 못 돌아올 땐 쪼개진 대나무처럼 아팠죠”

2014-11-24T15:26:11+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4-11-24 15:26:34  조회 수: ‘4658’

*** 2014년 11월 21일 발행 「동아닷컴」 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전요한 신부 “술 때문에 한국 못 돌아올 땐 쪼개진 대나무처럼 아팠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전요한 신부

 

《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에서 일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는 마치 내가 잘려져 나간 대나무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운 가지도 없고 반으로 쪼개진 대나무처럼 내 안에 정성스럽게 간직해 온 한국인으로서의 심장이 제거된 것 같았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전요한(숀 코닐리·71) 신부가 한 가톨릭 잡지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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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이런, 근혜 누님이 또 전화하셨네. 바쁘다고 했는데….” 전요한 신부는 인터뷰 중 걸려온 전화를 끊으면서 싱긋 웃었다. 전남 함평과 흑산도에 이어 다시 서울에서 대학생들과 젊은 시절을 보낸 그의 유머는 한국사람 수준이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는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1969년 사제품을 받은 그해 한국으로 파견됐다. 전남 함평과 흑산도 본당 신부에 이어 1975년부터 10여 년간 야학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의 대부(代父)가 됐다. 본당 사목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민주화를 위해 고민하던 학생들과 나누던 소주잔이 화근이 됐다.

 

18일 서울 동소문로 외방선교회에서 만난 전 신부는 ‘그의 과거’를 언급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흑산도 있을 때 어딜 가기만 하면 ‘신부님 오셨냐’며 밥그릇에 소주 가득 부어 주면 거절 못해 마셨고, 서울 올라온 뒤에도 행당동 닭 내장집에서 학생들과 또 한잔, 이러다 보니…. 허허.”

 

사제가 되기 전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그는 특히 1980년대 밤낮 없이 일하고, 술 마시고, 기도했다. 밤새 술자리에 있어도 단 5분도 정신을 빼앗긴 적이 없다고 자부하던 그는 결국 자신이 1992년 알코올 의존증 환자임을 인정하고 “하느님, 내 병을 고쳐 주세요”라며 밤새 울며 기도했다. 선교회는 1992년 그를 미국으로 파견했다. 치료와 새로운 사목 활동을 찾으라는 배려였다.

 

“언제 술을 마지막으로 먹었냐”고 묻자 그는 ‘1992년 3월 15일 멕시코에서’라고 정확하게 기억했다. “원래 이틀 뒤 미국에서 열리는 신부들과의 모임에서 마지막 잔을 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멕시코서 만난 한국 이민자 부부를 만나니 술 한잔하게 됐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한국 소주로. 나중 한국 와 보니 경월, 무학 같은 소주들 많이 없어졌더라고요. 하하.”

 

그는 술과의 인연을 끊은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한국 복귀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제가 정말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노는 걸 마다하지 않아 다시 무너질까 봐 선교회에서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국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쪼개진 대나무’로 표현한 그는 2005년에야 마침내 돌아왔다. 그의 말을 끊고 “정말, 이젠, 확실히, 술을 끊었냐”고 묻자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분명한 어조로 얘기했다. “I'm recovering, 나는 회복하고 있어요. 알코올 의존증의 세계에서는 recovered, 회복됐다는 과거형을 써서는 안 됩니다.”

 

그가 미국에서 새로 발견한 것은 ‘르트루바이(Retrouvaille)’였다. “프랑스어로 ‘(혼인)재발견’으로 풀면 되는데 위기에 빠진 부부와 가정을 돕기 위한 모임입니다.”

 

귀국 이후 그는 르트루바이 담당신부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올 초 서울대교구에서 단체 인준을 받기도 했다. “제가 대학생과 농촌 사목 활동을 많이 했죠. 또 제 건강을 위해 그 분야는 다른 분께 선물한거죠. 전, 술에서 벗어나 생명을 다시 받았으니까 이걸 사람들과 다시 나눠야죠.”

 

나이를 묻자 그는 “하도 오래돼서…. 치매인가…”라며 웃었다. 가끔 “난 이런 놈이니까”라며 한국 사람 같은 언어와 유머를 구사했다. 위기의 그를 구한 것은 바로 기도와 유머, 한국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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