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문] 한국진출 80돌 맞은 가톨릭 골롬반 외방선교회, 흑산도와 특별한 인연

2013-10-17T09:43:03+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3-10-17 09:43:22  조회 수: ‘5394’

*** 아래 기사는  2013년 9월 30일 「동아신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한국진출 80돌 맞은 가톨릭 골롬반 외방선교회,
흑산도와 특별한 인연

 

6·25때 구호물품 보내 섬주민 도와… “선교회는 선진문명-복음 전한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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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전남 신안군 흑산도 흑산성당 앞에서 임송 선교사, 이준용 주임 신부, 신자 이종암 씨(왼쪽부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작은 사진은 1970년대 초 신부와 신자들이 같은 장소에서 찍은 기념사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1933년 10월 29일 아일랜드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 10명이 배편으로 부산항에 들어왔다. 이들은 당시 대구교구 신학교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광주 목포 순천 제주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선교회의 발길은 1950년대 초 척박한 흑산도까지 닿았다.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된 곳이기도 하다.

 

26일 목포에서 바닷길로 90km가량 떨어진 흑산도를 찾았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흑산성당이 보였다. 골롬반선교회 진요한(아일랜드명 숀 브라질)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를 맡아 1958년 11월 11일 완공했다. 성당 초입 오르막길엔 바다를 향해 팔을 벌린 ‘흑산도 예수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유명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의 예수상을 본떠 2008년 만들어졌다.

 

한국에 들어온 지 80주년을 맞는 골롬반선교회는 흑산도와 독특한 인연을 맺어왔다. 1951년 목포 산정동성당의 안토마스(토머스 모란) 신부가 흑산도에 신자를 파견하고 사람들에게 밀가루 옥수수가루 우유 등 구호물품을 나눠 주도록 했다.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주민들로 신자가 크게 늘자 선교회는 본당 터를 확보하고 고국 아일랜드에 도움을 구해 돈을 마련했다. 신자들은 암반을 깎아냈고, 여성들은 바다에서 채취한 모래를 머리에 이고 날랐다.

 

선교회는 성당 건립뿐 아니라 1960년 성모중학교를 세워 교육에도 힘썼다. 건립 때부터 성당을 지켜온 이종암 씨(78)는 “당시 흑산도에는 초등학교밖에 없어 섬을 못 벗어나면 배울 수가 없었는데 중학생이 될 기회가 열렸다”며 “무상급식으로 학생들의 배고픔도 해결해줬다”고 말했다. 성모중은 1973년 평준화·공립화 정책에 따라 폐교되고, 이를 모체로 흑산중이 설립됐지만 아직 학교 터는 성당 옆에 남아 있다.

 

골롬반선교회는 1969년 흑산신용협동조합, 1971년 대건조선소, 대건발전소를 설립해 주민들의 자립도 도왔다.

 

조선소는 100t급 선박 건조 및 수리가 가능한 규모로 흑산도 어민들은 배가 고장 나면 목포까지 가야 했던 불편에서 벗어나게 됐다. 미군에서 구해온 설비로 발전소를 세우자 흑산도에 전깃불도 들어왔다.

 

1978년 첫 한국인 신부가 부임했다. 현재 흑산도와 주변 섬에는 6개의 공소(주임신부가 없는 예배소)가 있다. 신자 수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흑산도 주민 4명 중 1명은 가톨릭 신자다. 식당이나 가게에 세례명을 딴 상호가 많은 이유다. 인근 장도 공소 회장인 이충방 씨(73)는 “선교회는 신앙뿐 아니라 외부 세계의 선진문명이 들어오는 통로였다”고 했다. 하지만 골롬반선교회가 남기고 간 것에 대한 고마움은 옅어지고 있다. 흑산성당 이준용 신부는 “시대가 바뀌면서 흑산도 특유의 소박한 정신은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10월 29일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진출 80주년 미사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헌될 예정이다. 선교회 한국지부장인 아일랜드 출신 오기백(대니얼 오키프) 신부는 “골롬반 선교 역사를 돌아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정리할 수 있다”면서 “한국 천주교도 해외에서 많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흑산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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