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서울] 남이 나만큼 살도록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닙니다

2012-12-07T16:07:51+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2-12-07 16:07:17  조회 수: ‘5574’

*** 아래 기사는 2012년 12월 (재)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 에 게재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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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주민의 대부 안광훈 신부
남이 나만큼 살도록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닙니다
 

 

늦가을 볕이 창으로 곱게 들던 오후,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팀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올해 서울시 복지상 대상을 수상한 안광훈 신부를 인터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안광훈? 낯선 이름이었다. 그는 1941년 뉴질랜드에서 브레넌 로버트 존(Brennan Robert John)으로 태어나 1965년 사제 서품을 받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한국 땅을 밟았다. 그 뒤 삼척, 정선, 목동, 상계동, 미아동 등이 땅의 가장 낮은 곳곳에 들어가 주민들과 친구가 되었고 ‘달동네 주민의 대부’로 불린단다. 이정도면 그에 걸맞은 인지도를 갖출 만 한데 이번 수상 이전에는 자신을 드러낸 일이 거의 없었다. 이런 분이야말로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신여대 입구에 터를 잡은 가톨릭 골롬반외방선교회에서 드디어 안광훈 신부를 만났다.

 

 

“복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상 받고 연락이 빗발쳐서 정신없고 바빴어요. 삼양동 주민연대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이 나 모르게 명예시민권과 복지상을 신청해서 이렇게 됐어요(웃음).

 

1966년 한국에 오셨는데, 수많은 나라 중 왜 한국을 선택하셨는지요.
고등학교 다닐 때 골롬반 회지가 다달이 집에 왔어요.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귀한 일 하시는 분들 보고 제 마음도 움직였습니다. 해외 선교하고 싶어서 골롬반에 들어갔는데 한국으로 파견됐습니다. 남미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한국으로 오게 됐지요(웃음).

 

평생을 빈민가의 철거민 속에 들어가 사제 이전에 주민과 이웃의 일원으로 지내오셨어요. 그 과정에서 무수한 일을 겪으셨을 텐데 가장 슬펐던 일과 가장 기뻤던 일이 있다면요?
가장 슬펐던 일은, 정선에 있을 때 고3학생이 있었는데 교회 일도 많이 하고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어요. 당시엔 나도 젊은 편이라 아주 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죠. 그런데 내가 정선을 떠나 목동에 있을 때 그 친구가 처자식을 두고 자살했어요. 그런 일 있기 2주 전에 만났는데 문제가 좀 있다고 느꼈지만 그렇게 갈 줄 몰랐어요. 그게 제일 슬픈 일이지. 기쁜 일은, (지갑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며) 저한테 손자가 둘 있어요. 애들 아빠를 목동 있을 때 만났는데 결혼할 때 내가 주례 서주고, 아이들 낳고 크는 모습을 쭉 봐왔지요. 애들이 저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실제로도 가족처럼 가깝게 지냅니다.

 

손자 얘기하실 때 얼굴에 미소가 환히 번지셨어요(웃음). 신부님이 이 땅에 발을 디딘 이후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 소외된 이웃이 더 많아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욕심입니다. 부익부빈익빈을 그대로 인정하잖아요. 지금 한국 사회에 복지에 대한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고 대선 후보들도 호응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어요. 재벌은 수조 원을 탈세해도 풀려나고 서민은 100만 원만 훔쳐도 감옥에 들어가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죠. 이번 대선에서 시민들이 똑똑하게 뽑아야 합니다.

 

 

 

20121207_02.jpg필요한 것만 소유한다는 것
안광훈 신부는 필요한 것 이상을 지니고 다니면 안 된다는 신념을 삶으로 옮기며 산다. 홀로 거하는 5평짜리 다가구주택부터가 그렇고, 핸드폰, TV, 자동차 없이 산다. 필자도 이 세가지가 없는 ‘삼무(三無)주의자’라 그런지 인터뷰 내내 말이 잘 통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같은 책을 읽고 감화를 받지만(심지어 재벌들조차도!), 막상 자신들이 쓰고 있는 물건은 모두 필수품이라며 소유를 고집하지 않는가. 이쯤에서 궁금해졌다.

 

대체 어디까지가 필요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불필요한 것일까요?
요샌 휴대폰 없으면 사람이 아닌 것처럼 취급합니다. 휴대폰은 실상 비싼 장난감 아닐까요? 10년 전까지 휴대폰 없이 잘 살았는데, 멀쩡한 휴대폰 버리고 새 거 사는 건 낭비고 사치입니다. TV도 그래요, 채널이 100개 있으도 볼 게 없어요. 1주일에 1시간 볼까 말까 합니다. 저는 물론 차도 없습니다. 면허도 없고요. 늘 대중교통으로 다니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휴대폰, TV, 차 갖지 말라고는 안해요. 누구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어느 정도 소유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집 권리가 있어요. 매달 집세 걱정하고 2년마다 이사 가야 할 걱정을 하는 건 옳지 않아요. 밥 먹고 옷 사고 아플 때 치료 받고 자녀를 교육할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걱정 없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어야 해요. 그러나 그 이상 가질 권리는 없습니다. 그 이상은 남을 위해서 써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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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이 먹으면 좀 편하게 지내고 싶은 게 많은 이의 본성인데요. 신부님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다스리시나요?
지금 일흔이 넘었지만 아직 내가 편한 거 찾을 만큼 나이 먹었다고 느끼지 않아요(웃음). 관절은 좀 아프지만 건강에 큰 문제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일 중독입니다(웃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요. 심심해요. 건강 허락하는 데까지 계속 활동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앞장서서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 할 마음은 더 이상 없어요. 젊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서고 나는 뒷받침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사시니 안락하게 살 마음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겠네요(웃음). 벌써 한국에서 46년이나 사셨습니다. 저는 외국에 거주하던 10년간 향수병에 걸리곤 했는데 고국이 그립거나 하지 않으신지요?
90세 넘은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세요. 형제들도 있고요. 휴가를 얻어서 고국을 방문하곤 합니다만 뉴질랜드가 그렇게 그립거나 하지 않아요. 늘 한국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럼 하늘의 부름을 받는 날까지 한국에 살며 이곳에 뼈를 묻을 생각이신지요?
벌써 묏자리 잡아놨어요(웃음). 원주 쪽에 배론 성지라고 있는데 때가 되면 거기 들어가도 되느냐고 하니까 된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문화+서울」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만족할 줄 알아야 해요.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을 버려야 해요.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그건 이기주의예요. 한국은 좀 심해요. 나만, 혹은 내 가족만 생각하고 공동체나 공동 이익엔 관심 없어요. 우리나라, 우리 동네라는 말 많이 쓰지만 그거 다 빈말입니다. 내 필요가 채워지면 다음엔 우리 이웃들이 나만큼 살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를 떠나 인간으로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인간 아니죠. 개신교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성당에 빈부 격차 심하고 성당 안의 무슨 무슨 회장 같은 높은 자리는 부자들이 차지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민망해서 성당 못 나와요. 명동성당에 가보시면 수백, 수천 억 들여 엄청난 건물 짓고 있는데 대체 그걸 왜 할까요? 선행은 없고 돈 많이 내리는 권위주의만 있어요. 복지사업, 빈민사목 보조금도 반으로 줄였고요.

 

개신교 전도사로 말씀드리자면, 교회도 더하면 더하지 다를 것 없습니다.
부자가 되면 양심이 없어져요.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너무 어렵다고. 강남 살면서 성당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성령 기적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에,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충분하다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에 가장 위협적인 말이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뜰로 나가 서 있는 신부님을 보니 동화책에 나오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생을 투쟁의 현장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인상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인데 저런 인자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내공이구나 싶었다. 그 자애로운 미소를 뒤로하며 신부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다가 평화롭게 이 땅에 묻히기를 빌었다. 이에 대해서만큼은 종교를 떠나 모든 독자가 한마음이라 믿는다.

 

 

 박 총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나는 네 아이의 아빠. <밀월일기> <욕쟁이 예수>의 저자.

 

사진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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