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밤샘 파티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는 날

2013-01-29T11:45:35+09:00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1-29 11:45:56 댓글: ‘0’ ,  조회 수: ‘10029’

***** 아래 글은 「생활성서」 2012년  12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 

 

 

밤샘 파티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는 날 

 

박정호 _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아침미사를 다녀와서 점심까지 챙겨 먹었는데, 아직도 온몸이 뻐근하다. 지난주 다녀왔던 지부총회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간밤에 옆집 파티 때문에 잠을 단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정부에서 공공사업으로 주택단지를 지어 주민들에게 제공한 이곳 마을의 집 구조는 좀 특이하다. 겉보기에는 마당도 제법 있는 아담하고 예쁜 2층 주택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건물을 반으로 나눠 2세대가 살고 있다. 내부는 벽 하나를 마주하고 양쪽 집이 마치 거울을 보듯 정확히 대칭인 구조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저렴하게 분양한 집이어서 질 좋은 내장재라든가 방화, 방음의 개념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고, 그렇다 보니 평소에도 옆집에서 설거지를 하는지 부부 싸움을 하는지 죄다 알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물론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이겠지만, 이번 주말처럼 파티가 있는 날이다. 가뜩이나 방음시설이 부실한 데다 성능 좋은 앰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밤새도록 춤추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옆집 입장에서는 창문과 벽이 흔들릴 정도로 소음(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진동에 가깝다)이 심하고 내가 마치 파티 장소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게다가 큰 음악소리와 술 취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지면 내가 잠자는 건 고사하고, 아이들이라도 깨지 않고 잘 자기를 밤새 기도하게 된다. 정말 미스터리 한 건 그런 소음이 우리 집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 텐데, 누구 하나 항의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칠레 출신이라 그런지 그 전쟁통에도 불구하고 미동 한번 하지 않고 잘 잔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조그만 층간 소음에도 이웃 간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은 우리나라를 생각할 때, 처음에는 이곳 사람들의 인내심에 대단한 존경심을 가졌던 적도 있었으나, 이내 그것이 꼭 인내심이나 관용의 힘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번 주말에 이 집에서 파티를 하면 다음 주말에는 저 집에서, 또 그 다음은 앞집에서, 그리고 뒷집에서… 뭐 그런 식이다. 이를테면 그 큰 음악소리가 흠잡을 일도 아니고 이웃 간에 얼굴 붉힐 일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다고 이웃들이 고기냄새 난다고 항의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듯, 이곳의 파티도 ‘아~ 저집 파티하는구나.’ 그 정도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칠레의 전반적인 문화는 아니다.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은 곳에서는 이웃 간의 에티켓에도 신경을 쓰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주위에 피해가 간다면 자제하기도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다른 동네에서 단기 선교를 위해 우리 동네를 방문했던 한 칠레 학생이 이런 말을 했었다.
“참 흥미로운 것이, 이곳은 가난한 지역이라고 들었고, 실제로 가난한데도 집집마다 위성 안테나와 평면TV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어서 놀라워요.”
실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내가 가졌던 의문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토록 가난하게 살면서도 왜 케이블TV나 질 좋은 앰프를 갖춘 미니오디오에 아까운 돈을 투자하는가. 처음에는 그것이 칠레 사람들의 어떤 문화적인 특징이라 생각했었지만, 그 젊은이가 하는 얘기를 듣고는 그것이 이 지역만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것이 미덕인 한국 사람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들의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이제는 든다. 낮은 소득수준으로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접할 수 없는 이들에게 TV의 축구경기 중계와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그들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 줄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또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늘 지쳐 있고, 더러는 멀리 지방으로 돈 벌러 떠나서 달포씩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에서, 주말에 이웃들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화끈하게(?) 치러지는 그들의 파티는 거의 유일한 사교의 장이자 삶의 해방구와도 같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불행히도 아무리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매 보아도 조금 더 나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옮겨가는 것 외에 스스로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구조적인 배경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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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는 다른 지역에서 칠레지부 총회가 있어서 온 가족이 오랜만에 여행을 하였다. 이곳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행방구가 있듯, 아이들 키우느라 어디 나들이 한번 하기 어려운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의무적으로 사목지를 떠나야 하는 지부총회는 선교 여정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되기에 충분하다. 비록 총회 원래의 취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1년에 두 번 사제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독신과 부부, 어른과 아이가 모두 함께 뒤섞여 이뤄지는 골롬반 총회는 국경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골롬반 선교의 비전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장이다. 이러한 우리의 비전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아기예수님을 통해 오늘의 삶 안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더불어 이웃의 밤샘 파티소리를 부드러운 자장가로 들을 수 있는 작은 여유가 하루빨리 내 안에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 박정호 선교사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2008년부터 칠레에서 아내 김규희 선교사와 함께 청소년·가정 사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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