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두레]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충만함을 위한 만남

2014-09-24T15:02:26+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4-09-24 15:02:41  조회 수: ‘4247’

*** 2014년 9월 21일 소식지 「빛두레」 에 게재된 글입니다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경축 이동/ 연중 25주간 강론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충만함을 위한 만남’

 

 

남승원 (토마스 아퀴나스)신부_성골롬반외방선교회

 

 

지난 6월 말 올해 초 지워사제 프로그램에 지원하신 네 분 신부님의 파견미사를 마치고 칠레와 페루에서 사목하시는 다른 지원사제 신부님들을 방문하면서 제가 사목하던 페루 리마 까라바이요 교구 본당을 방문했었습니다. 그곳 신자들을 다시 만나니 페루를 떠나면서 유아세례를 주었던 아기가 벌써 7살이 되어 저에게 안기던 기억, 첫 영성체를 주었던 어린아이가 중고등부 견진 교리교사가 되어 저와 찍은 사진이 아직도 거실에 있다며 환하게 웃던 기억, 당시에도 연세가 많으셨던 열심하신 할머니 한 분이 주일 미사 중에 저를 알아보시고 반가운 마음에 우시던 기억… ‘꽃보다 청춘‘에서 보여주던 페루사람들보다 더 잔잔하게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페루신자들입니다.

 

그밖에 이번 방문을 통해 기억나는 지인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토니’씨입니다. 토니씨는 고등학교의 교원노조 대표였으며 지역 교원노조 대변인 활동도 했던 선생님입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동료 선생님들, 교장 및 학교 이사단 그리고 지역사회의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토니 선생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한 그 현실이 한국에서는 공무원이나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노조 설립을 불허하거나 탄압하고 있고 늘 대립관계처럼 보이는 고용주와 노조, 정권과 노동운동…심지어 최근에는 청와대 게시판에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글을 올린 현직 교사를 구속하려고 했던 검찰과 경찰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토니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교사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노조 활동의 참역할, 학부모와 지역 주민간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아이들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의미있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토니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힘과 방향을 얻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마도 200여년 전 순교자들도 천주학이라는 만남을 통해, 교리공부와 토론을 통해, 신자들과의 기도회와 미사를 통해, 신분의 높낮이와 성별을 초월하는 만남과 신자와 비신자간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을 처음 만나고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충만해 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경축 이동일로 지내면서 지난 8월 16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자 수십만 명이 광화문광장과 인근 도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해봅니다.

 

시복미사를 집전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강론을 통해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시면서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지난 8월 16일 시복된 124위는 신해박해(1791)에서 병인박해(1866∼1888) 까지 초기 한국천주교의 순교자들입니다. 광화문 시복미사에 참석했던 수 십 만 명의 신자들은 ‘기억의 지킴이’로서 223년 전,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싫었던 권력에 의해서 죽어간 것을 기억하며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노라고, 그리고 순교자들이 꿈꾸던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참세상을 2014년 지금을 사는 우리들도 살아갈 수 있도록 ‘희망의 지킴이’로서 이를 성찰하고 기도하고 실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200여 년 전의 죽음에 대해서는 기억하면서 159일 전 희생된 세월호참사의 일반인과 단원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죽음에는 일반시민은 물론 신자들까지도 ‘이제 그만’이라고 말합니다. 드라마 속의 인물의 죽음에 대해서는 눈물을 짜며 슬퍼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벌어진 참사의 진실과 실종자/유가족들의 ‘왜?’라는 물음에는 왜 이리 무정한 것일까요? 왜 현실의 지킴이가 되기 거부하는 것일까요?

 

“한 시대를 제대로 평가하는 유일한 방식은 그 시대가 인간 삶의 충만함이라는 진정한 대의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묻는 것이다-로마노 과르디니 신부” 여기서 인간으로서의 충만한 삶이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의 생명과 존엄과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는 그런 사회’일 것이고 생명의 존엄과 안전은 인간만이 아닌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환경의 존엄과 안전도 포함될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의 지킴이’로써 실종자 가족들과 유가족들과 함께 이 여정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세월호에서 죽어간 자들을 기억하겠다는 이들의 싸움은 인간을 비인간화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해가려는 국가와 (인간성을 상실한) 비인간들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다.-노명우 아주대 교수”이기 때문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과 124위의 복자들을 기억하면서 용산참사, 쌍차 해고노동자, 제주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송전탑, 세월호참사 등등 인간으로서 그리고 자연으로서 삶의 충만함은 불구하고 무참하게 짓밟힌 아이들, 이웃들, 자연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더 충만해져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글을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