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회심, 우리 교회의 경칩?

생태적 회심, 우리 교회의 경칩?

글  안인성 패트릭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 선교잡지 『골롬반선교』 편집장이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1987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파견되어 서울, 전남 영광, 광주에서 본당사목을 하였으며, 생태와 환경에 관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해왔다.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금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지만,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음력설과 양력 신년 두 개의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에 놀랐다. 더구나 설날과 추석 명절이 부활절과 성탄 축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에 매우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내 고향 뉴질랜드에서는 성금요일이 공휴일이다.) 그때 나는 비록 문화의 다양성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이 가진 타당성과 “정상 또는 보통”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세계관은 (대부분) 우리가 가진 무의식적 틀로써, 특정한 역사-문화-지리적 맥락에 내재되어 있는 삶의 리듬을 설명하고 형성한다. 그래서 자기 세계관이 당연히 보통이며 정상이라고 여기기 마련인데, 다른 문화를 만났을 때 비로소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 드러나며, 그 보통과 정상을 다른 세계관에서 발견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안인성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내가 시골 본당에서 사목하기 전까지만 해도 음력의 중요성, 문화와 생활의 밀접한 관계를 깊이 인식하지 못했으나 차차 주요 명절 외에도 24절기를 통해 음력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경칩, 얼어붙은 산천이 녹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다시 개골개골 우는 때에 농부들은 농사 지을 시기가 왔음을 알게 된다. 음력으로 표현되는 예측 가능한 자연의 리듬에는 즐거운 편안함이 있고, 우리 삶의 이치에 꼭 들어맞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뭔가 심각하게 빗나간 느낌이다. 지구 생태 위기가 심화하면서, 계절마다 나타났던 날씨 패턴을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태풍과 장마가 더욱 심해진 것 같고 삼한 사온 겨울 날씨 패턴은 지속되는 한파로 바뀐 것도 같다. 더 일찍 시작하고 더 늦게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지고 길어진다.

사진 출처: pixabay

아울러 개구리 울음소리는 갈수록 귀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홍수, 화재, 가뭄, 기근이 빈번해졌고, 숲이 사라지고 있으며, 해수면은 상승하고 있다. 지구의 생태적 상황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점점 더 우리 모두는 우리의 세계관과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에 도전하는 비극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 창조의 흠 없는 외투”는 산산이 조각나기 직전 너덜너덜한 상태로 해지고 있다(『찬미받으소서』 9항). 또 다른 표현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 신앙고백(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첫 번째 조항,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를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하늘”은 잘 믿어왔지만, 창조주가 주신 선물인 이 “땅”은 있는 그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 사실 아닌가? 오늘날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창조의 의의”를 고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교황들의 말을 찾아 보면, “환경 인식과 보호”에서 “생태적 회심”으로 표현이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찬미받으소서』 2~6항). 언어 표현의 선택은 중요하며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환경 인식과 보호 측면의 언어에 익숙해져 있으며, 보다 검소하게 살고 낭비를 줄이며, 에너지 소비를 제한함으로써 환경을 보호하는 여러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적 회심 生態的 回心”은 완전히 또 다른 것을 포함한다. 생태적 회심은 하느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히브리인들의 통찰을 재발견하고 심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창세기 1~11장은 하느님께서 지으신 우주의 성전 안에서 여자와 남자가 피조물을 “일구고 돌보는” 참된 사목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야기다(창세 2,15; 『찬미받으소서』 66항). 우리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처럼 하느님의 이름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함으로써 이러한 통찰을 강화할 수 있다.

하느님과 똑같아지려는 우리의 교만과 욕망(창세 3,5) 때문에 저지른 원죄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10). 슬프게도 하느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모든 피조물 즉 자연과의 관계가 산산이 부서졌다. 이러한 창조와 죄악의 맥락에 서 볼 때, 생물과 환경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연구하는 생태학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2천 년 동안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왔다.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은 누구인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는 무엇인가? 내 이웃이 누구이며, 내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는 무엇인가?”를 포함한 중요한 질문을 해왔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였다. 해답 중 일부는 아름답고 심오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 생태적 재앙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해답은 현재 불충분한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제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겠다. 지구 전체의 생물 다양성이 끝없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도덕적인 삶은 과연 무엇인가? 오늘날,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활발한 주식 시장을 위해 자연 파괴를 계속해도 되는가?

2019년 아마존 시노드 개믹미사, 출처: Vatican News(바티칸뉴스)

약 12억 명 가톨릭 신자가 온 나라에 흩어져 살고, 세계 전체 인구 가운데 약 여섯 명 중 한 명은 (정도 차이는 있더라도) 우리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제, 잠시 상상해 보자. 이 거대한 공동체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생태적 회심으로 나아가며, 하느님의 선물인 이 지구의 생태 다양성을 보호하는 실천을 한다면….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성 바오로의 말씀대로 이 각성, 이 깨어남을 나는 “우리 교회의 경칩”이라고 부를 것이다. 아마 그것을 위해 개구리도 개골개골 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 본문에 인용된 『찬미받으소서』는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반포한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으로 환경 회칙, 생태 회칙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캘리그래피: 부재환 프란치스코 신부(제주교구 지원사제, 페루 선교)

『골롬반선교』 2021년 봄호(통권 제118호) 11~13쪽

By |2021-05-06T11:44:09+09:002021-05-06|골롬반 소식|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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