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열매_토미 머피 신부

선교의 열매

글  토마스 머피 Thomas Murphy 신부

번역·배영재 요세피나

아일랜드 출신으로 사제수품 다음해인 1974년에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한국 이름은 진 토마스. 광주대교구 흑산도·강진, 부산교구 연산동 본당에서 활동했다. 이후 대만에 파견되었고, 2006년부터 6년간 골롬반회 총장을 지냈으며 재임 중에 총본부를 홍콩으로 이전했다. 현재는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골롬반외방선교회. 본지 편집장

『골롬반선교』 2021년 겨울호(통권 제120호) 24~25쪽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인 9월 20일, 미사를 드린 직후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이 축일이 돌아올 때면 지난날 한국에서 살며 쌓았던 풍요롭고 소중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토미 머피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은 1974년 서울에서 보낸 첫 주말, 故 지학순 다니엘 주교(1921-1993)가 체포당하여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입니다. 초대 원주교구장 지 주교가 구속되자 전국에서 수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과 성직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고, 서울 명동대성당에 모여 시국선언과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1974년에 구속된 지학순 주교는 이듬해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으나 2020년에야 재심을 거쳐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1974년 7월 6일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고 지학순 주교(맨 왼쪽)는 이날 명동대성당에서 양심선언을 하였고, 8월에 다시 투옥되었다. 사진 제공: 한국교회사연구소, 『김수환』, 2002.

당시 한국에 갓 파견된 저와 동료 선교사들은 한국어도 모르는 데다가 한국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후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였지만 항의 집회에 합류했습니다. 비록 부족함이 많고 문화 차이가 존재했지만, 저는 그날 다른 문화와 엄청난 인연을 맺었고 그 자리,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투쟁 속에 곧바로 일치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때 경험은 골롬반 선교사로서 헌신하고자 하는 저를 계속해서 탄탄하게 지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보낸 4년 동안 저는 낯선 문화에 완전히 몰입되어 새롭게 눈뜨게 되었고, 제 세계관이 한정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는 참으로 풍요로웠으며, 한국 사람들은 삶 속에서 가족 및 친구들과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고, 죽음마저도 일상생활의 일부로 만들었습니다. 신앙과 영성, 종교를 표현하는 감수성은 아주 풍부하고 깊었습니다.

한국에서 선교했던 당시 ⓒ토미 머피 신부

저는 창덕궁 후원을 비롯한 유명 사적지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한국인이 지나온 유구한 역사를 배우는 기회를 가졌고, 제 고향 아일랜드의 켈트 문화 만큼이나 오래된 한국 문화에 관해 더 잘 이해하게 되 었습니다. 그때부터 ‘문화’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 가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 문화 배움은 진행 중입니다. 한국어 학교에 다니면서 한국어뿐만 아니라 더 복잡한 한자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자 수업은 매일 한 시간씩 하는 선택 과목이라서 굳이 듣지 않아도 되었지만, 저는 다행히 수강할 수 있었습니다. 한글과 한자를 함께 배우면서 한국과 중국 간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통찰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중국과 협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 여러 나라들로서는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국과 중국의 역학 관계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토미 머피 신부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성경, 기도, 용서, 구원에 관해 배우려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신앙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안에 뿌리내린 신앙의 깊이에 대해 진지한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앙이 뿌리 깊이 자리잡은 아일랜드 사회 속에서 신앙적으로 지지를 받으며 자란 저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연시해 왔고,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사람들을 한국에 와서야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이 선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선교사인 저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저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골롬반 선교회의 정신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동료 선교사들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훌륭한 골롬반 선교사들과 만나는 특권을 누렸고, 약점과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선교 사명에 헌신하는 그들의 모습은 저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제주 성 이시돌 목장을 방문했을 때 ⓒ토미 머피 신부

저는 중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한국에서 한자 공부에 시간을 투자한 덕을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초기 한국교회 신자들이 가톨릭 신앙을 처음 접한 곳이기도 합니다. 시절이 변해 요즘 한국과 중국에 있는 골롬반 선교사들은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파견된 나라뿐만 아니라 더 널리 나눌 방법을 찾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1974년 당시에는 꿈도 못 꿔본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게 흥미로울 따름입니다. 

By |2021-12-21T10:00:09+09:002021-12-21|골롬반 소식|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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