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칠레-2)

작성자: 손선영등록일: 2009-07-15 16:47:17  조회 수: ‘5981’

 

여섯번째 소식(2009. 6.19)

평화를 빕니다!!!

안녕하세요? 박정호 김규희 부부입니다. 잘 지내시죠?
와~ 춥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 되지도 않았는데, 날씨가 너무 춥네요. 멀리 안데스 산맥에는 벌써부터 눈으로 뒤덮이기 시작했고,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코끝을 시리게 합니다. 습하고 비가 많이 오는 이곳의 겨울 날씨는 한국의 건조한 겨울과는 또 달라서, 선교사들의 표현으로는 으슬으슬 뼈가 시리는 날씨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얼마 전 칠레남쪽에서 일하시는 한국 신부님으로부터 전기장판을 선물 받아 나름 온돌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는 얼마 전 굉장히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2세가 생겼거든요. 아직은 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너무나 감사한 일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저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길거리에서 지나쳐 가는 사람들조차 요즈음은 범상치 않게 보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도 한때는 누군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오랜 기다림과 보살핌의 소중한 결정체였겠지요?

한편, 새로 오는 생명이 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떠나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지요. 김수환 추기경님이 먼저 가셨고, 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 칠레에서는 칠레 골롬반회 의 지부장이신 미겔코디(Michael Codi) 신부님이 지난 4월 선교사의 삶을 마감하셨지요. 모두들 갑작스럽게 가시게 되어서 적잖이 놀라기도 하고 참 슬프기도 하였습니다.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을 보며 우리는 우리각자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며, 또한 떠나가는 사람을 보며 우리의 삶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지, 마냥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배움 들이 있었던 시간들 이었습니다.

오늘로 저희들이 이곳 칠레에 도착한지 꼭 1년이 되었습니다. “1년”이라는 숫자 그 자체로는 그다지 큰 의미도 없고, 또 저희들의 삶에 있어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이런 시간의 마디를 접할 때 마다 우리는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수많은 만남들, 우리가 했던 일들, 재미있었던 일, 실수 했던 일, 그리고 보고 싶은 얼굴들….
누군가 그러더군요. 대나무가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삶에 있어서 시간이라는 마디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흔들림 없이 곧게 가꿔 나갈 수 있다구요.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참 감사한 일이네요. ^^
아무튼 지난 1년간 많은 기도와 관심으로 저희들을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를 드리며, 스승이신 주님의 이름을 빌어 평화를 전합니다. 더불어, 오늘“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세상 곳곳에서 봉헌의 삶을 살고 계시는 모든 사제들에게도 주님의 보살핌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살아가는 이야기.. *
∙ 2009. 5.22 금요일

아침에 집주인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이유인 즉 슨, 다음 달 말까지 집을 좀 비워달라는 내용인데……. 평소엔 잘 안 들리던 스페인어가 오늘따라 어찌나 또렷이 들리던지……. 못 알아듣는 척 할 껄 그랬나? ^^
아무튼 표면적인 이유는 자기네 집 주인이 집을 비워 달래서 자기도 어쩔 수 없다……. 뭐 이런 논리인데 글쎄, 그게 참…….
사실, 한 10년 이상 신부님들과 선교사들이 살던 집이라 예전에 비하면 놀랄 만큼 깨끗해지고 정돈되어 있었던 터라……. 게다가 우리도 지난 1월 이사한 후로 베로니카의 그 깔끔한 성격 덕에(차마 내 성격이라곤 못하겠고) 얼마나 닦고 조이고 광내고 했는지 모르는데, 이제 와서 선뜻 비워주기가 적잖이 아쉽다.
근데 사람이란 참 재미있는 것이, 막상 비워주려고 생각하고 보니 안 좋은 점들이 하나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어제저녁 까진 그토록 소중하고 아늑한 “비둘기 집”이었는데, 오늘 보니 2층 화장실에서 물도 좀 새는 것 같고, 방에 햇볕도 잘 안 들고, 이웃집 개는 새벽마다 어찌나 짖어 대는지 잠을 설치기 일수고(말이 안 되니 항의도 못하고 T_T)……
아무튼 뭐 가라면 가야지. 이것도 선교사의 삶의 일부분이 아니겠는가. 고치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그리고 또 떠나고……. 새집은 더 좋은 집으로 구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사치일까?

By |2009-07-15T16:47:31+09:002009-07-15|평신도선교사 소식|2 Comments
Go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