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칠레-4)

작성자: 손선영등록일: 2009-10-23 09:57:33  조회 수: ‘5728’

 

  la Paz
여덟 번 째 소식(2009. 10. 19)
평화~
안녕하세요? 박정호 김규희 부부입니다. 잘 지내시죠?
이렇게 책상에 앉아 보는 게 정말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정신 없이 바빴던 지난 두 달간 이었습니다. 이것저것 행사도 많았었고, 차를 몰고 가다 약간의 접촉사고도 있어서 경찰서 구경도 해 봤구요. (칠레 경찰은 정말 무섭게 생겼습니다. 유니폼도 전투복 색깔에다 기본적으로 중무장을 하고 다닙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지난 토요일에는 청년들과 도보 성지순례를 다녀 왔습니다. 안데스의 성녀 데레사를 기념하는, 칠레에서는 굉장히 큰 행사였습니다. 본당의 각 공소 에서는 한달 전부터 음식을 팔거나 하는 방법으로 참가자금을 마련하여 전세버스를 빌렸구요(이 기간에 여행사, 운송회사 심지어 학교의 버스까지 모두 동납니다.) 당일 날 새벽 4시에 출발하여 7시 반에 성지순례 시작지점에 도착, 오후 3~4시까지 성지에 도착하는 약 30Km의 순례를 하게 됩니다. 주로 청년들이 도보행사에 참여하고 다른 가족이나 노약자들은 차편으로 성지에 먼저 도착해서 도시락을 준비하고 기다리게 됩니다.

청년들이라 그런지 그 열정이 얼마나 굉장하던지요. 뜨거운 남미의 태양에 쉬 지칠 법도 한데, 행사 내내 그들의 노래와 기도와 재잘거림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지함과 엄숙함 대신 그들만의 방식으로 성인의 삶을 묵상하고 감동을 표현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성지에 도착해서 여러 가지 공연, 행사들이 있었고, 주교님들과 100여명의 사제단이 집전하는 미사로 그날의 행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미사가 끝날 즈음, 영성체 순서였습니다. 워낙 많은 인파들 속에서 사제들과 신자들이 뒤엉키다 보니 약간의 혼란이 있었고, 제 차례가 되었을 때에 그만 신부님이 성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급히 몸을 숙여 사람들의 오고 가는 발들 사이를 더듬거렸고 다행히 크게 상하지 않은 성체를 찾아 모실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굉장히 미안해 하셨고, 저는 웃으며 괜찮다 했지만, 성체를 모시고 돌아서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요. 한국을 떠날 때의 다짐과 약속들이 떠올랐습니다.
『흙 바닥에 떨어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밟힌 그런 이들을 섬기겠다 하지 않았나? 그런 예수를 찾겠다 하지 않았나? 그렇게 몸을 낮추어 살겠다 하지 않았나? 지저분한 성체를 희생과 봉사로 “먹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먹고 그 맛을 즐기겠다 하지 않았나? 』
한국을 떠난 지 1년 반, 칠레에 온지 1년이 되어 갑니다. 그 동안 맛보고 경험해 왔던 많은 신기한 것들, 새로운 세상들이 이제는 대부분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여행을 하듯 들떠있던 저의 마음도 이제는 조금씩 가라 앉고 있는 듯하네요.
아주 중요한 전환의 시기라 생각됩니다. 이제는“해외선교”가 아닌 “이웃선교”가 되어야 하고, 그것은 어떤 특별한 활동이 아닌 저희들의 삶 전체를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 안에서 평신도로서의 역할이기도 하겠지요.

이곳 칠레에서는 지난 9월 21일부터 봄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봄이 봄 일수 있는 것은 그 날짜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때문인 것처럼, 신앙인이 신앙인일수 있는 것은 교적에 올라있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따뜻한 삶의 온기를 지니고 그것을 이웃과 공동체와 사회에 내 뿜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쪼록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시고, 그분의 평화와 온기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이야기 하나.
∙ 2009. 9.10 목요일
1. 지난달 동료들과 구청엘 갔다. 청소년 봉사활동으로 넓은 공소 마당에 나무심기를 하기로 했는데, 다들 생활이 빠듯한 처지에 나무 심자고 돈을 낼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생각 하던 중 시청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구청의 “환경과 녹지”담당 부서에서는 나무 뿐 아니라 정원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인력과 장비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고, 이미 내부적으로 계획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공원도 아닌 사유지에 나무를 심고 정원을 만들어 줄 계획을 해 놓았다니…
2. 공소의 한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아침에 그녀와 그녀의 개를 시내에 대려다 주었다. 뭔 말인지 너무 빨라 뭣 때문에 가는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일단 도와줘야겠단 생각에 동행하였는데, 더욱 놀랍게도(?) 그곳은 암캐들을 불임수술 하는 곳이었다. 그것도 시청에서 무료로… 수술비용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지 않은 예산일 텐데.
3. 베로니카는 근처 초등학교의 종교 수업에 참여한다. 오후에 학교에 갔다 온 베로니카의 말.
“애들이 교과서가 하나도 없더라”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교과서 값이 비싸 정부에서 대여를 하거나 여유가 있는 집 아이들만 교과서를 살 수 있다는……
사회복지정책의 개념이 이리도 다른가 보다. 정원을 만들고 개를 수술해 주는 것 보다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논밭을 팔아서라도 대학 보내는 한국의 교육문화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이곳 사람들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노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지만.

By |2009-10-23T09:57:24+09:002009-10-23|평신도선교사 소식|선교지에서 온 편지(칠레-4)의 댓글을 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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