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라마 씨 가족의 꿈_이경자 크리스티나 선교사

2022-12-30T10:46:46+09:00

라마 씨 가족의 꿈

글 이경자 크리스티나 평신도선교사
성골롬반외방선교회. 2000년부터 11년간 필리핀에서 선교하고 돌아와 한국지부의 평신도선교사 코디네이터를 담당하였다. 이어서 2017년에 아일랜드로 파견되어 이주민, 난민 사목을 하였고, 2021년 한국지부로 발령받았다.

『골롬반선교』 2022년 여름가을합본호(통권 제122호) 20~21쪽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 가고, 어떤 사람은 오래 만난 사이가 아니었어도 헤어진 후에 오랫동안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이 된다. 

코로나로 인한 아일랜드 정부 방침에 의해 이웃집조차 방문이 허락되지 않았던 당시 내가 활동한 난민 센터의 문도 굳게 닫혀버렸다. 난민 700여 명이 사는 그 넓은 곳에 코로나 통제를 위한 긴 울타리가 세워졌다. 모든 프로그램과 활동이 중단되어 나는 그곳 친구들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마치 감옥에 갇힌 느낌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즈음, 나의 친구 라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접했다.

티베트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님과 함께 네팔에 가서 자리잡은 라마는 네팔 여인 락뚜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부모님과 언제 만날지 모를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유럽의 다른 나라를 거쳐 아일랜드에 도착한 후 난민 신청자가 되었다.

난민 센터 ⓒ이경자

난민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이러한 활동은 난민들이 겪는 불안과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경자

난민들의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했을 때 ⓒ이경자

내가 라마와 락뚜를 만난 곳은 난민 센터였다. 아프리카와 동유럽에서 온 경제 난민들을 포함해 정치 난민,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전쟁 난민 등 서로 다른 이유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전쟁 난민 신청자들은 비교적 쉽게 체류 허가를 받아 아일랜드 정부가 마련해 준 집으로 옮겨 살 수 있지만, 경제 난민 신청자들은 오랜 기다림 후에야 겨우 허가를 받을 수 있고, 10년 넘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위험하지 않은 나라로 분류된 네팔에서 온 이 부부 역시 체류 허가증을 받기 위해 난민 쉼터에서 5년 넘는 세월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동안 사랑스러운 아들도 태어났다. 언젠가 아일랜드의 일원이 되는 희망으로 살던 이 부부는 난민 신청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자 아내 락뚜가 더블린 근처 공장에서 일하고 라마는 아이를 돌보며 미래를 위해 절약한 돈을 저축하면서 성실하게 살았다. 

라마는 꽃을 좋아하는 티베트 불교 신자였다. 내가 센터를 방문할 때면 그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하이! 크리스티나” 하며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는 가족의 보금자리인 쉼터 방 안에 여러 식물과 꽃을 가꾸었고 불상 앞에 향을 피우며 그리운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였다. 언젠가 벽에 걸린 사진 속 인물인 달라이 라마를 내가 알아보자 그는 달라이 라마가 자기 삶의 지주이며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가 쉼터 입구 작은 터에 꽃을 심으며 작은 소망을 나에게 들려주었던 날이 생각난다. 비슷한 처지를 사는 이웃들의 삶이 꽃처럼 빨리 활짝 피길 바란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듯하면서도 왠지 슬퍼 보였다. 그에게 꽃을 가꾸는 일은 막연한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인고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특별 허락을 받아 난민 센터에 들어가 아내 락뚜를 만났다. 그녀는 얼마 전에 가슴 통증을 느꼈다는 남편의 말을 흘려들었던 것과 아들 손을 잡고 숨을 거둔 남편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녀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했지만, 남편을 기억할 때마다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그녀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라마의 장례 절차는 복잡했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모자라는 장례 비용은 이웃 친구들과 골롬반 신부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아빠가 너무 피곤하셔서 주무시고 계신다는 엄마 말을 듣고 어린 아들은 다시 못 볼 아빠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라마는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떠난 지 열이틀 만에 그리워하던 부모님이 계신 네팔로 돌아갔다.

난민 신청자들은 고향 가족에게 일이 생겨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아일랜드를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 락뚜도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 아일랜드에 남기로 했다. 아일랜드에서 당당한 일원이 되기 위한 그녀의 기다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기다려왔던 5년의 세월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모두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을 그토록 기다렸던 라마, 지금은 가족과 친구들의 기억 안에 추억과 그리움으로 남아, 못다 이룬 소박한 꿈과 희망의 삶을 주님과 함께 나누고 있을 거라 믿는다.

난민 센터에 사는 이들과 소풍을 갔을 때 ⓒ이경자

故 라마 씨가 손수 꾸민 작은 정원 ⓒ 이경자

故 라마 씨가 손수 꾸민 작은 정원 ⓒ 이경자

발행함: 2022년 12월 9일,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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