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메리 할머니의 정원_김정혜 선교사

김정혜 로베르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선교사. 2004년부터 11년간
일본에서 선교한 후, 한국지부에서 평신도선교사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2020년 초, 영국으로 파견되었다.

2020년 2월, 마스크와 손 소독제로 중무장하고 인천공항을 떠나 도착한 영국 버밍햄은 아직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다. 공항에서조차 두세 명만 마스크를 쓰고 있을 뿐 긴장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3월 들어서면서 영국 상황도 급변하더니 결국 23일, 내가 있는 잉글랜드 전역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20일, 때맞춰 이사 들어온 집에 영국 골롬반회의 봉사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봉사자가 22일 합류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를 봉쇄 기간을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정부 방침에 따라 필수품 구매, 1일 1회 산책으로 그나마 외출이 가능했고, 나름 낯선 지역과 문화에 적응하고 배우는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필수품 구매, 1일 1회 산책으로 그나마 외출이 가능했기에 낯선 지역과 문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영화 속에서나 봤던 두렵도록 적막한 날들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새벽부터 끊이지 않는 고운 새소리였다. 그 소리에 끌려 일어나 흰 구름 넘나드는 새들을 따라 집을 나서면, 다채로운 꽃과 잎 무성한 키 큰 나무들이 열어 주는 길을 걸으며 청량한 개울물, 호수를 차며 날아오르는 거위의 커다란 날갯짓을 만나며 점차 다큐멘터리 같은 자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새들이 얼마나 신중히 나뭇가지를 골라 둥지를 짓는지, 비바람을 어떻게 견뎌내며 알을 품는지, 다른 새들을 경계할 때와 새끼를 부르는 소리는 어떻게 다른지, 꽃잎의 고운 색은 어떻게 변하고, 어떤 열매를 어떻게 맺는지, 새와 곤충과 꽃들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는지… 멈춰 서버린 인간 세상과 달리 자연은 보란 듯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성서 속 돌아온 아들을 받아주는 아버지처럼 지친 어깨로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을 자연은 소리 없이 받아 주며 위안과 평화를 주고, 그들의 생명력을 전해주고 있었다.

무겁고 적막하기만 하던 도시는 점차 곤충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 다양한 새의 지저귐, 풍성한 꽃향기, 햇살에 말간 잎맥까지 드러나는 나뭇잎, 바람에 설렁이는 나뭇가지들, 멋진 색을 하늘에 뿌리며 넘어가는 석양, 고요한 거리에 어김없이 나오는 달 등이 이웃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긴장감 역력하던 사람들 표정은 둥지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새끼를 숨기기에 바쁜 어미 새 앞에서 조심스레 서로를 향해 미소를 던지기 시작했고, 후드득 떨어진 엄청나게 큰 체리 열매에도 놀란 표정을 서로 나누며, 짙푸른 나무 그늘을 걷는 상대방에게 안부를 묻는 여유도 보이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더니 자전거 수리점, 판매점은 가장 바쁜 곳이 되었다.  이는 바이러스에 덜 노출되는 이유도 있지만 자연을 이웃으로 맞이하며 보이는 예우이기도 했다.

7월 초 봉쇄령이 완화될 무렵, 드디어 내게도 자전거가 도착했고 세상으로 통하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현재 다양한 ‘커뮤니티 가든(모두에게 열린 정원으로 특히, 심신에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갖고 계신 분들을 위한 원예 프로그램 운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우연히 알게 된 홀로 계신 90세의 메리(가명) 할머니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정원 손질도 도와드리고 있다. 메리 할머니의 정원을 처음 방문한 날, 폭풍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정원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지난봄 잡초에 미끄러져 넘어진 후부터 나와보지 않는다”라면서 “보잘것없는 정원”이라며 말끝을 흐렸지만, 담벼락의 장미는 당신 아버지가 심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마치 영국의 잿빛 하늘같이 들렸다. 그 너머에 햇살을 품은 영국의 하늘, 비 오는 날에도 갑자기 맑은 날을 만날 수 있고 뜻하지 않은 무지개도 만날 수 있는 그 하늘.

다음 날, 나는 넘어진 채 뒹굴던 화분들을 손보고, 나뭇잎과 가지를 쓸어 담고, 깨진 병 조각과 조명등을 주웠다. 정원이 어느덧 제 모습을 드러내자 오래된 묵은 흔적들을 단숨에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새삼 경탄했고, 당신의 잠재웠던 의욕을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을 받아 한구석에 있던 검은 비닐을 걷어내자 멋진 테이블과 의자가 드러났고, 파라솔마저 창고에서 꺼내 끼우니 할머니는 탄성을 올리며 기뻐하셨다. 그날 이후 내가 정원을 돌보는 동안 메리 할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장미는 몇 송이가 더 피었는지, 옮겨 심은 나무는 얼마나 자랐는지 등의 보고(?)를 들으며 할머니의 세밀한 관찰력에 놀라는 한편,  그동안 망가진 정원을 내려다보던 할머니 마음이 어떠했을까 싶었다.

화분 속에서 고생하던 나무들은 원하시는 곳에 옮겨 심고, 정원 담벼락을 새로 칠하던 어느 날, 할머니는 이웃 사람이 장미를 좋아하니 옆집으로도 장미 만발한 가지를 넘기고, 덩굴은 동서로 뻗어나가게 하고 싶다고 하셔서 내가 가시 무성한 장미 덩굴을 군데군데 묶고 있으니 뒤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갑자기 울먹이셨다. 내가 와서 할머니 삶에 빛을 밝혀 주었다며 2층에서 바라보는 정원이 얼마나 아름답고, 여름처럼 피고 있는 장미를 보며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지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이전에 정원 일을 해 주던 사람이, 장미를 동서로 뻗어가게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언니가 심은 다 커버린 화분 속 나무도 옮겨 심어 달라던 할머니의 바람과 달리 장미를 싹둑싹둑 잘라 버렸고, 나무는 작은 화분에 갇힌 채 폭풍에 쓰러져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불편하여 대부분 시간을 2층에서 보내며 정원을 내려다봐야 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느님 마음을 떠올렸다. 메리 할머니의 희망을 저버린 정원사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희망을 무시하고 우리 욕심대로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이, 더, 더…를 외치며 이 세상의 정원을 망쳐왔고 하느님은 그런 정원을 묵묵히 내려다 보고 계신 것은 아닐까?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자연을 바꾸고 생명마저 마음대로 다루다가 새, 닭, 돼지, 소 등이 병들게 되었을 때도 울부짖는 그들을 땅속에 산 채로 묻어 버리고는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는커녕 ‘이전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다.  그 누구도 처리할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원자력 발전의 쓰레기를 그저 지구 깊숙이 차곡차곡 묻기만 할 뿐 위험한 쓰레기를 계속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 아무 반성이나 새로운 선택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 그대로’…

온난화로 뭇 생명의 현재와 미래가 위협받고 있어도 어떻게 하면 ‘지금, 우리’가 더 편하게 잘살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나오면 이전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것을 얘기한다. 지금껏 그러했듯이 우리의 ‘이웃’인 ‘자연’을 식민화하고 노예처럼 착취했던 그 생활로, 아무 반성이나 돌아봄 없이….

하지만,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 5, 13)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이제야말로 ‘서로를 섬기는 자유’를 실천하는 삶으로 전환할 때이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며 이 세상을 잘 관리하라는 하느님 뜻을 살피고 자연생태계의 모든 생명을 어떻게 잘 섬길 수 있을지를 애기하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꿈꾸고 선택할 때이다. 가시에 찔리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더라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이웃으로 섬기는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때, 모든 생명이 함께 향기로운 장미를 즐길 수 있으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By |2021-01-28T07:10:36+09:002021-01-20|골롬반 소식|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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