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차 해외선교사 귀국프로그램

2022-11-14T14:45:04+09:00

아름다운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이덕형 라우렌시오 신부

(글라렛 선교수도회)

Re-entry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제주 성 이시돌 피정 센터에서 지난 10월 19~23일 동안 열린 ‘해외 선교사 귀국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한국 가톨릭 해외 선교사 교육협의회(KCFMEA)가 주관한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들은 ‘돌아온 선교사들’이다. 해외 선교사 체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이다. 해외 선교사 체험을 ‘선물’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 하나는 세상에 두 번 태어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곳으로 파견된 선교사들은 신생아가 된다.

그래서 두 개의 고향을 갖는다. 또 다른 이유는 하느님 말씀을 세상 끝에서 전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 선교사들은 이국땅에서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기쁨(마태 13, 44-46 참조)을 얻는다. 그러나 그 큰 선물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그 선물을 직면하고 내면화하며 가치를 발견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그 선물을 어떻게 이웃들과 나누어야 하는가는 선교사들에게 주어진 숙제와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Re-entry 프로그램은 참으로 유의미했다.

나에게는 우선 이런 말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어서 오세요, 잘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말들은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날 아침에 나눠준 ‘해외 선교사들을 위한 소책자’의 첫 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별말이 아닌데 순간 울컥했다. 선교지에서 돌아온 것이 아직도 매끄럽게 매듭지어지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선교지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여러분들과 오랫동안 함께 살려고 왔습니다.” 라고 인사했던 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게 먼저 생각났다. 함께 활동했던 수도회 동료 사제들과 작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떠올랐다. 위험과 도전이 가득한 아프리카에 친구와 동료와 가족(같은 토템을 지닌 사람들)을 남겨두고 나만 빠져나온 것 같아 죄스러웠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현실을 올바로 바로 볼 수 있었다. 지난날의 잘못과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길도 찾을 수 있었다.

Psyco therapy(심리극)는 Re-entry 프로그램의 꽃이었다. 선교지에서의 문화 충격, 선교사들과의 갈등과 충돌, 대화와 소통의 부재, 언어 장벽 등 여러 가지 상황에서 자신의 일부 또는 상대자의 일부 역할을 수행해 보는 시간이었다. 심리극에서 크게 배운 것 두 가지는 ‘잠시 멈춤’ 필요성과 ‘자기 이해’의 중요성이었다. 선교지 책임을 맡고 있던 스페인 출신 선교사와 내가 마주한 상황이 심리극 안에서 벌어졌다. 긴장되고 불안했던 나는 감정이 격해지고 말투가 날카로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대화가 아니라 비난을 나타내는 표현이 입에서 나오자 전문 치료가 수녀님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심리극 참여자들을 중앙에 두고 원을 그리며 여유를 갖도록 나를 인도했다. 편안했다.

잠시 멈춤의 효과였다.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이성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본연의 나를 발견하고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나는 나에게 꼬리표를 많이 달고 다녔음을 고백한다. “한국 사람은 달라야 해”,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에게 누를 끼치면 안 돼”, “훌륭하고 멋있고 모범적인 선교사가 되어야 해” 등 ‘내 삶의 모양에 맞는 삶을 살기’ 보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의 삶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이제 그 거추장스러운 꼬리표들을 모두 떼어내고,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의 범주에서 벗어나 창조주께서 지어주신 내 모습으로 ‘나 다운 시선과 관점’으로 살아가기를 지향하게 됐다.

해외 선교사 귀국 프로그램은 고국으로 돌아온 선교사들을 환영하고, 그들의 선교 업적을 지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의 동의어라 한다. 마무리와 시작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연속선에 놓인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고국에서의 새로운 소임에 투신하기 위해서는 선교지에서 만난 공간 및 사람들과 아름다운 작별이 필요했다. 이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돌아온 해외 선교사’로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단기 또는 중・장기 계획을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작년에 선교지에서 돌아와 큰 수술을 받은 나는 우선 건강 회복을 위한 운동 계획을 세웠다. 또한 국내에 있는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 수도자들과 공조하여 한국에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프리카 이주민들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도 세웠다.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해 ‘자연 피정’ 동반도 계획했다. 버스 운전이 가능한 점을 살려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서 피정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프로그램을 ‘자연 피정’ 안에서 구체화시켜 보자는 생각을 했다. 교회와 사회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의 신원을 더욱더 강하게 인식하도록 이끌었다.

귀국한 해외 선교사들이 새로운 소임지에서 오롯이 적응하고 투신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해외 선교 기간과 비례한다고 했다. 내가 짐바브웨 쇼나 족들과 살면서 모토로 삼은 쇼나 말이 있다. ‘Zvishoma nezvishoma(쥐쇼마 네쥐쇼마)’, 곧 ‘천천히 더 천천히’라는 뜻이다. 서두르지 말고 모든 면에서 다가오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삶의 자리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있다. 피정 집 입구에서 바라본 맑고 선명한 한라산 백록담, 어두컴컴한 새벽 시간에 정물 오름에서 만난 일출, 곶자왈 도립공원을 거닐다 데크 위에 누웠던 숲속, 협재 해변에서 “잘 가, 내일 또 보자”고 했던 일몰이 지금도 그립다. 웃다가 울다가 뜨겁게 안아주며 지지해 주고 서로 공감했던 프로그램이 참 좋았다. 선교 체험을 절제하고 축소하며 살아가는 ‘귀국한 해외 선교사’들에게 격려와 자긍심을 느끼게 해준 교육협의회와 봉사자 및 동반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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