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제] 기다리는 행복_부재환 프란치스코 신부

기다리는 행복

글 부재환 프란치스코 신부

제주교구의 첫 번째 골롬반회 지원사제다. 4월 초 한국을 떠나 선교지 페루에 도착하여 선교 사제의 삶을 시작하였다.

한국을 떠나기 전 서울 골롬반 본부에서 봉헌한 파견미사,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좌신부 4년 차를 마칠 무렵, 저는 스스로 타성에 젖어 간다고 느끼며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매년 11월 성 골롬반 축일에 제주교구 전체 사제들이 골롬반 사제관에 모이는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날 참석한 당시 지부장 김종근 신부님이 인사말에서 지원사제 제도를 소개하며 초대를 하셨습니다. “이제 제주교구도 이렇게 신부님들이 많아졌으니 골롬반회에 지원해 주십시오. 교구장님께서 지원하는 사제가 있으면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저 멀리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가 저에게는 너무나 크게 들렸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신학생 시절 캄보디아 선교 실습 때 담아 두었던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저는 이렇게 결정할 것이 아니라 일단 부딪쳐 보고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겠다 싶어 교구장님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주교님, 우리 교구가 골롬반 선교사들이 개척한 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동안 큰 도움을 주었던 선교회가 교구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제 우리 교구도 구체적인 응답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캄보디아에 있었을 때부터 줄곧 선교의 꿈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이런 제 뜻을 강우일 주교님은 흔쾌히 받아 주셨습니다. 다만 당장 내년(2019년)은 장담할 수 없으나 2020년에는 반드시 보내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저도 그때까지 기도하고 식별하며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로 1년 뒤, 저는 다시 주교님을 찾았습니다. “제 마음은 변함없고, 오히려 갈망이 더 커졌습니다. 작년에 주교님께서 하신 약속에 대한 답변을 들으러 왔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고, 앞으로 저를 시작으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는 사제들이 계속 나오기를 바란다고 하시며 기쁘게 보내 주셨습니다.

2020년 1월, 골롬반회와 정식으로 지원사제 준비 프로그램 계약을 맺었습니다. 곧바로 해외 선교사 교육을 시작으로 해서 영어 공부, 영어 미사 연습을 꾸준히 해 왔고,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어렵사리 C.P.E(임상 사목 교육)까지 준비 과정을 무사히 다 마치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 악화로 계획대로였다면 한국을 떠났을 7월 말까지도 발령이 보류되었고, 교구장님께 양해를 구하여 하반기에도 서울 골롬반 본부에 머물면서 필요한 준비를 이어가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부재환 프란치스코 신부와 골롬반 성인(동상),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어느 나라로 가는지 발령조차 나지 않는 막막한 상황 속에서 외롭고 힘든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지내느냐, 언제 가느냐는 지인들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보다는 불만과 막막함을 토로하는 것이 싫어서 되도록 연락도 만남도 피했습니다. 그런 고립된 생활로 때론 모진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12월,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기를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새 교구장 문창우 주교님은 12월 중순까지 발령이 나지 않으면 저를 복귀시켜 내년 제주교구 인사에 포함한다는 공문을 골롬반 총본부로 보내셨습니다. 복귀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저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짐 상자를 챙기고 있었는데 복귀 기한일을 나흘 앞두고 드디어 희망했던 남미지부 발령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소식이었으나 넉 달 후인 2021년 4월 1일 자로 발령이 났고, 게다가 백신 접종을 하기 전까지 이동하지 않을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4월까지 또 어떻게 더 기다리라는 말인가, 백신을 언제 맞을지도 모르는데 발령일에 맞춰 간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저는 더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교구장님과 전화 면담을 했고, 결국 저의 선택은 ‘순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래 지체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저는 이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저를 붙잡고 보내려 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의 오묘한 섭리에, 그리고 저와 일면식은 없지만 당신께서 도구로 쓰시는 골롬반 공동체의 장상에게 순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이 공동체를 통해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닌 당신이 부르신 바로 그 길로 오게 하시려 저를 이끄셨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오랜 기다림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을 저에게 경험케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명’과 ‘인내’의 덕입니다.

지원사제 계약을 마친 후, (왼쪽부터) 골롬반회 지원사제 담당 남승원 신부 · 필자 · 제주교구 문창우 주교· 한국지부장 임영준 신부,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서울 골롬반 본부 바로 이곳이 나의 첫 선교지이며 이미 선교는 시작되었다고 받아들이니 참 많은 은총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제가 겪고 있는 이 시간은 ‘기다리는 행복’입니다. 이곳에 이렇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수많은 좋은 사람들과 내 자신과의 만남을 감사하며, 오늘도 파견의 그날을 기다립니다. 끝으로 성무일도 중에 저에게 큰 힘이 되었던 말씀을 나눕니다.

“날 위해 시작하신 일 주는 마치시리라. 주여, 너그러우심이 영원하시오니 손수 하신 당신 일을 버리지 마옵소서”(시편 138,8).

『골롬반선교』 2021년 봄호(통권 제118호) 18~19쪽

By |2021-05-10T09:13:54+09:002021-04-30|지원사제 게시판|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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