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칠레의 11월은 성모님의 달

2012-12-21T11:11:56+09:00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2-12-21 11:11:22 댓글: ‘0’ ,  조회 수: ‘10111’

***** 아래 글은 「생활성서」 2013년 1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 

 

 

칠레의 11월은 성모님의 달 

 

박정호 _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기억하나 

그때가 한 열 살쯤 되었을까? 더 됐을 수도 있고 덜 됐을 수도 있겠다. 어느 날 친구 욱이와 제법 멀리 산책을 갔었다. 동네 뒤편으로 이어진 제일모직 공장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면 담쟁이 넝쿨이 우거진 고풍스러운 느낌의 ‘공순이’누나들 기숙사도 보였고, 좀 더 지나면 바다처럼 끝없이 넓은 잔디밭과, 가끔 운이 좋으면 공을 던지며 연습을 하고 있는 삼성라이온즈 아저씨들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출출해진 배를 달래며 이제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하는데 욱이가 갑자기 근처에 보이는 포장마차 호떡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100원을 꺼내 호떡 하나를 집어든 욱이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눈길도 한번 주지 않고 다시 가던 길을 걸으며 호떡을 먹기 시작했다. 냠냠 짭짭 손가락까지 빨아가며,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먹느라 정신이 팔려 아무 말도 없는 그 녀석에게 한마디 했다.
“나도 쫌 도오~.” 그러고 0.1초도 안 돼 돌아온 그의 단호한 대답.
“안 해! 쩝쩝,” 배고픈 건 둘째 치고 창피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마음에 나중에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 의리 없는 자슥, 지 혼자 묵드나?”
하시고는 그날 오후 내내 부엌에서 호떡을 구워서는 큰 접시에다 고봉으로 쌓아 주셨다. 덕분에 나는 그날 원 없이 호떡을 먹을 수 있었다. 턱이 아프도록.
그분은 늘 그러셨다. 입 짧고 살도 별로 없던 아들이 무언가 먹고 싶어 하는 눈치면, 언제나 큰 접시에다 혹은 그릇에다 가득가득 담아 주셨다. 감자전이든, 만두든, 비빔국수든, 수박이단…. 

 

기억 둘 

가족들은 모두가 개성이 강하였다. 성격들도 강하고 주장들도 강하였다.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고, 아이들도 키는 자랐지만 아직 설익은 사춘기가 되자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서로에 대한 살가움이나 화기애애함 따위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어쩌다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언성이 높아지곤 하였다. 그리고 그분은 그 가운데 가장 약한 분이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자기만의 공간을 집 안에, 그리고 마음속에 조금식 만들기 새작했고 점차 그곳에 머무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와 공부해야 한다는 변명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대화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은연중에 공감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끊어질 듯 말 듯 위태로운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가족이라는 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가운데의 가장 약한 고리 덕분이었다. 그분은 언제나 성격 강한 가족들의 한가운데 머물러 계셨고 가족들은 그분을 통해 대화를 하고 서로의 소식을 들었다. 가끔 집에 들를 때면 어김없이 ‘느그 아부지는…’으로 시작하는 집안 소식들을 그분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아버지도 ‘요새 호야는… 정이는…’하는 자녀들 소식을 그분을 통해 전해 들으셨다. 그렇게 한 분이 나머지 모두와의 관계의 끈을 혼신의 힘을 다해 끌어안고 계셨다. 

 

기억 셋 

3년간의 첫 선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외할머니 말씀처럼 둘이 갔다 셋이 되어 돌아오던 그날, 그분은 아파트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짐작컨대,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리를 들으셨을 텐데도, 그리고 현관으로 들어서는 발자국소리와 첫 손주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분명히 들으셨을 텐데도 꼼짝없이 거실에 앉아 지난 3년간 쌓아왔던 그리움을 감추고 계셨다. 베로니카가 ‘어머니~’하고 부르자 그제야 해맑은 웃음으로 나오신 그분은 이내 손주를 안아도 보시고 업어도 보시고 하며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으셨다.
그리고 바로 그날부터 휴가 끝날 때까지 틈만 나면 “느그는 또 갈끼가? 우짤끼고?”하는 똑같은 질문을 하셨고 나는 그저 모르겠다는 퉁명스런 대답만 해 대다 다시 칠레로 돌아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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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성월 마지막 날(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에 각 공동체마다 꽃으로
장식한 성모님을 모시고 행렬을 한다. 미사가 끝난 후 성모상을 만지고 입을 맞추기 위해 사람
들이 몰려들었다.

 

 

‘맑은 하늘 5월‘만 성모님의 달인 줄 알았더니, 지구 반대편 이곳에서는 한 해가 다가는 11월에 성모 성월이 한창이다. 우리에게는 초겨울 찬바람과 가로수 낙엽 내음이 더 익숙한 시기에 이곳에서는 바야흐로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꽃들이 피는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문화적으로 한국 못지않게 모성(母性)에 대한 정서가 강한 곳이기에 성모 성월 기간 동안 칠레의 모든 공동체는 매일같이 신자들이 모여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평소에 주일미사에 잘 나오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이 기도모임에는 참석하여 가족과 이웃, 형제들을 위한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구역 내의 모든 사제, 신자들이 큰 광장에 모여 각 공동체 별로 시내 행렬을 하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게 된다.
성모 성월을 보내며 나도 지구 반대편의 어머니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처럼, 우리 교회의 어머니도 언제나 그렇게 우리의 작은 투정을 넉넉히 받아 주시고, 하느님과 교회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지켜 주시며, 떠났던 우리의 마음이 돌아오기를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계심을 믿는다. 

 

* 박정호 선교사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2008년부터 칠레에서 아내 김규희 선교사와 함께 청소년·가정 사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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