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지원사제 이현규 대건안드레아 신부(서울대교구)

이 글은 2021년 1월, 서울대교구 해외선교봉사국 홈페이지에 실린 이현규 신부의 선교 이야기입니다.

원문 바로 읽기

찬미 예수님.
칠레 이키케(Iquique)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이현규 신부입니다. (…)

2020년 3월,
처음으로 바이러스가 칠레로 들어왔을 때에는, 이렇게까지 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칠레 정부는 유난히 강경책으로 바이러스 침투에 대응했고, 아마도 한국처럼 한,두 달 안에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 예측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고, 3월에 닫았던 성당 문은 10월까지 단 한 번도 열리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지역 봉쇄와 짧은 사회적 거리두기 정도로 시작했습니다. 외출 자제를 요청하고, 학교와 종교시설, 공공시설 등 위험도가 높은 장소에서만 집합 제한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2달이 지난 후 국가와 지역 감염자가 폭증하며, 칠레 정부는 점점 더 제한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강력하게 변화시켜 갔습니다.

지역별로 다소 시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2020년 5월을 전후로 하여 대부분의 지역은 가장 강한 강도의 격리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서는콰렌테나(Cuarentena)’라고 부릅니다. 가장 높은 단계인 1단계에 접어들면 상점, 가게,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의 외출마저 제한됩니다. 자기 집 밖을 나올 시에는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정부의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하며, 1인당 1주일에 2, 최대 3시간의 외출이 가능했습니다. 미사나 회의, 종교적 모임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저 역시 장례와 위급한 병자성사를 제외하곤 모든 업무를 중단한 채, 주기적으로 갖는 온라인 전례와 회의로만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칠레의 인구가 그렇게 많은 나라는 아니라, 사실 세계적 이슈는 되지 못했습니다만, 2020년 5월부터 7월 정도까지는 인구별 확진자 수로 세계 5위 안에 들었던 가장 심각한 감염국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미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경찰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도시에 진입하여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을 한 채 질서유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감염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토록 통제가 심한데 어떻게 전염병이 퍼질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통제와 규율은 엄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흔히들 내로남불이라고 하죠.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정작 자기 일에는 규칙보단 자기감정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실 예로 집 앞에서 세차를 할 때 방독면을 쓰고 나와 세차를 하고 들어가지만, 가족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명절 때, 혹은 연인이나 친한 친구들과 모일 때에는 아무런 경각심 없이 최소한의 방역 노력도 없이 모이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족 모두의 집단 감염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집안도 제법 됩니다.

처음엔 이 모든 통제에 불만과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통제 역시 따르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모든 것에 굴하지 말고, 빨리 성당을 열고 미사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중에 감염자가 생기고, 사망자도 끊임없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그런 의혹조차 제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공동체 안에도 대부분은 가족이나 친척 중 누군가를 잃었고, 또 직접 감염되어 중환자실에 다녀왔거나, 보내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구에서도 종신 부제님 한 분과 수녀님 한 분이 하느님 곁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물론 봉쇄 조치는 많은 문제를 가져왔습니다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심각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직업을 잃었고, 당장의 생활고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어려운 상황을 인지한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들이 선제적으로 도움을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동네, 특별히 어려운 지역에 먼저 도움이 닿았고, 무료 급식소나 자선 상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를 돕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교회와 본당 역시 그중 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 덕에 반년 이상의 봉쇄조치에도 저희 도시에서는 아직 굶어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칠레 내부에서도 특별히 더 가난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이기에 더 놀랍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버티기에 급급한 시간이었습니다. 10월이 되어 거의 5개월 만에 봉쇄 조치 2단계로 넘어가기까지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절을 모두가 함께, 하지만 각자 단절된 곳에서 참고 견디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상황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2단계로 진입하며 평일에는 자유로는 외출이 가능해졌고, 미사와 전례도 10명까지는 방역수칙을 지키는 전제 한에 모임이 가능한 상태입니다물론 아직 주일은 외출이 불가하고, 10명 이상의 모임은 금지된 상태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가끔이나마 다시 모여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질서정연하게 10명씩 신청자를 한 주 전에 미리 받아 미사를 계획하고, 봉헌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원의 제한 때문에 미사 대수를 전보다 늘려야 했지만, 혼자가 아닌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현규 신부가 활동하는 지역의 한 공소

이번 팬데믹 현상은 저뿐만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과 단절된 삶에서 오는 여러 부정적인 모습들을 겪어야만 했지만 반대로 그전에는 몰랐던 일상의 소중함,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현실에 무뎌졌던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소소한 행복들의 가치를 되찾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부디 모두 아픔을 딛고 일어서 다시 미래를 보여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골롬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이웃에게 들려주세요.

Go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