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이상한 나라의 안드레스 신부_전보근 신부

2026-08-27T20:31:34+09:00

이상한 나라의 안드레스 신부

글  전보근 안드레아 신부

전주교구 사제이다. 아르헨티나에서 교포사목을 하며 라틴 아메리카와 첫 인연을 맺었다. 201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지원사제로 페루에 파견되어 수도 리마에서 도시빈민사목을 하였고, 현재는 페루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쿠스코에서 현지인 사목을 하고 있다.

『골롬반선교』 2022년 봄호(통권 제121호) 10~11쪽

"저런 건, 라스베가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두사부일체」(2001년)라는 코미디 영화 대사다. 그 당시 사람들은 상식 밖의 일을 접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길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 대사를 따라 하던 기억이 난다.

공소 가는 길. 필자가 서 있는 곳은 해발 4,100m 고산지역이다. ⓒ 전보근 신부

라틴 아메리카에 내 삶을 내어 맡긴 지 벌써 13년째인데도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접할 때마다 놀라워하는 나 자신이 새삼스럽다. 비단 토픽이나 이슈뿐만 아니라 그간 내 경험을 보더라도 마치 꿈만 같은, 아니 거짓말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겪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종종 한국에 있는 동료 신부들에게 들려주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치이, 그런 게 어딨어?", "아이고, 얘 안 되겠다. 한국에 빨리 돌아와야겠네. 외국에서 살더니만 뻥만 늘었구먼!"

이렇다 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이곳에서 체험한 일을 말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주변에서 선교지에서 경험한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아무리 보채도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 뿐이다. 한국에 휴가갔을 때 교구 신부들과 아침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한 신부 왈 "전 신부는 왜 선교지 이야기를 안 해? 우리한테 재밌는 이야기하고 막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네." 그러자 다른 신부가 하는 말 "뭐, 전 신부가 안 하고 싶겠어요? 이야길 해도 우리가 못 알아들으니까 안 하는 거겠죠."

지면 관계상, 개인 체험 딱 하나만 간략히 말하자면, 현재 안데스 고산의 시골에서 살고 있는 필자는 벼락이 너무 무섭다. 2018년 성탄절 전야, 사제관에 벼락이 떨어져 죽을 뻔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벼락이 물탱크에 떨어졌는데 공교롭게 주방에서 설거지 중이던 나는 벼락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나동그라졌고, 집 안의 전선이랑 전구가 다 타버리거나 터져 버렸다. 이 사건을 나중에 한국 휴가 때 이야기했더니, 듣는 이들 십중팔구가 내가 이야기를 엄청 부풀린 것으로 알아듣는 눈치다. (사실 이 사건은 아직도 부모님께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이곳은 우기 때면 벼락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빈번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벼락으로 안타까운 사고가 두 건이나 일어났을 정도다. 벼락 이야기가 주제가 아니니 여기서 이 이야기는 끝.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는 페루 안데스의 신자들 ⓒ 전보근 신부

공소 미사 ⓒ 전보근 신부

공소 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는 필자 ⓒ 전보근 신부

공소로 들어오는 어린이들 ⓒ 전보근 신부

공소 앞에서 ⓒ 전보근 신부

라틴 아메리카, 마술 같은 사실의 세계
이곳 안데스 선교지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자연과 사람, 문화, 역사 그리고 이곳에서 현재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이 내게는 모든 게 신기하고 마치 마술 같다는 생각이다. 어느 때는 환상적이면서 두렵기도 하고 기쁘면서 슬프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라스베가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라틴 아메리카다. 여기에서 살면 살수록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 아니, 이상한 나라의 안드레가 된 느낌이다(필자의 세례명 '안드레아'의 남성형 스페인어식 표현. 이곳에서 안드레아는 여자 이름).

라틴 아메리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마술적 사실주의(realismo mágico, magical realism)'이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신기하고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마치 마술을 보는 것처럼 풀어가는 것인데, 많은 한국 독자들이 이러한 소설을 접하면 매우 낯설어한다. 이곳 라틴 아메리카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이들에겐 평범하고 당연한 일들이 다른 문화, 다른 세계에서 온 이의 눈에는 매우 낯설고 평범하지 않기에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안데스에 계신 하느님과 함께
오늘도 이곳 안데스 ─ 더 넓게는 라틴 아메리카 ─  에서 낯설고 이상한 하루가 시작된다. 마치 앨리스가 흰 토끼에 홀려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것처럼, 하느님께 홀려서 이곳 라틴 아메리카에 이끌려온 안드레스 신부의 이상한 나라 이야기는 계속된다. 비록 남들은 내 이야기가 과장되었거나 뻥이라고 웃어넘겨도 나에게는 사실이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저는 안데스에 사는 야마라고 해요! 반가워요~" ⓒ 전보근 신부

최초 발행: 2022년 4월 11일,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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