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 “도둑님, 감사합니다”

2011-12-16T10:20:12+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1-12-16 10:20:37  조회 수: ‘5791’

아래 기사는 2011. 12. 18일 발행 「평화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상)-“도둑님, 감사합니다”
조성근 선교사(성골롬반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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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소 주위에 사는 한 할머니 집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이 필자.

“따르릉~”

아침부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어댑니다.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려 예상은 했지만 혹여 오늘은 건너뛰지 않을까 했는데 그럴 리가 있나요. “헤노비오! 어젯밤 또 도둑이 들었어.”

본인 잘못도 아닌데 연락해 주신 공소 회장님은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 하십니다. 자전거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이번에는 도둑이 공소 옆 건물 지붕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제가 일하는 뿌엔떼알또 산마티아본당에는 공소가 8개 있는데, 비에따까데리(복자 가타리나) 공소는 유난히 넓은데다 인적 드문 벌판을 끼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넓은 공터에 온갖 쓰레기를 내다 버립니다. 또 밤이 길어지고 비가 오는 7월 겨울이 시작되면 거의 매일 도둑이 들다시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신고를 해서 이제는 경찰관에게 미안하기까지 합니다. 신고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착한 경찰관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찰관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참 쳐다보더니 대답합니다.
“여긴 행정구역상 빨간지역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이에요. 도둑 반, 일반인 반인 곳인데 무슨 대책이 있겠어요. 그냥 조심하고 사세요.”

공소에는 도둑이 하도 많이 다녀가서 중요한 걸 놓아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이란 문에는 몇 겹씩 쇠창살을 둘렀습니다. 그래도 정말 신기할 정도로 밤손님들이 뚫고 들어옵니다. 도둑은 들어와봐야 가져 갈 것도 없고, 우리는 우리대로 수리비만 들어갑니다. 어느 날은 청년 4명과 방범대를 조직해 한 시간씩 순찰을 돌았습니다. 새벽 3시쯤 가까운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겁을 먹고 순찰을 포기했습니다.

날이 밝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제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그리고 아무것도 가져갈 게 없는 이곳에까지 들어와야 하는 ‘도둑님’의 절박함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계형 범죄 극성에 경찰도 속수무책
새로운 의미 심어줄 꽃밭 정원 만들어
도움이 방해가 될까 망설였던 신자들

그날 밤에도 여전히 도둑이 들어와 수도꼭지들과 씽크대를 뜯어갔습니다. 문에 덧댄 쇠창살을 벌려 들어간 구멍을 보니 체격이 작은 아이가 분명합니다. 어쩌면 어른이 그 아이를 들여보냈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그들의 가난이 해결 되지 않는 한 도둑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꽃을 심어 정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꽃밭 정원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의미를 심어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서요. 하지만 정원을 만드는 일이 그토록 힘든 일인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땅을 고르고 흙을 퍼나르면서 얼마나 불평을 하고 투덜거렸는지 모릅니다. 당연히 신자들이 나서서 도와주겠지 생각했건만, 어떤 사람은 “기왕 하는 김에 우리집 정원도 손봐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까. 분통이 터졌지만 참았습니다. 막상 정원을 만들어놓고보니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매일 물을 줘야하고, 며칠 안 가보면 걱정이 되고, 손이 가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도둑은 계속 들었고, 저는 변함없이 투덜거리며 정원을 관리했습니다. 정원에서 돌을 골라내고 꽃을 심으면서, 동네 사람들과 관리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또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꼬마들에게 물 한 모금을 떠주면서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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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뿔싸! 정원을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정원에 심을 나무를 옮기며.

한달 정도 동네를 떠나게 돼 물 주는 일을 공소에 맡겼습니다. 잘 도와주지도 않는 이들에게 맡기고 자리를 비우는 게 불안했지만 언젠가는 이들이 관리해야 할 정원이기에 맡겨 보기로 했습니다. 한 달 후 도착하자마자 정원이 걱정이 돼 가보니 누군가 몇 그루의 꽃나무와 과일 나무를 심어놨습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사는 게 바빠 도와주지 못했고, 또 도움을 청하지 않는데 나서는 것은 간섭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닌데 제가 오해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한없이 좋은 분이십니다. 저의 그런 무지함과 어리석음 안에서, 제가 오만과 편견의 정원을 만들고 있는 동안 제 마음 속에 당신 향기를 맡으며 기도할 수 있는 ‘하느님 정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랑은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제가 하는 일을 지켜봐 주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원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헤노비오” “헤노비오”하고 불러주는 친구들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그날 밤 순찰을 돌고 있을 때 우리성당을 들러주신 도둑님께 감사드립니다. 선교사의 삶 안에서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도둑님이 더 이상 밤손님으로 살아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후원계좌
제일은행 225-20-435521 (재)성골롬반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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