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 외국인 선교사 등 수백 명 학살된 순교터

2013-07-26T17:01:13+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3-07-26 17:01:27  조회 수: ‘5328’

*** 아래 기사는 2013년 7월 28일 「평화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 

 

외국인 선교사 등 수백 명 학살된 순교터

 

정전 60주년 기획 ‘6ㆍ25 순교자 믿음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성당’ – ③ 옛 대전 목동성당

 

 

465232_1_0_titleImage_1.jpg
▲ 옛 목동성당은 대전에 지어진 최초 성당으로 소박한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축물은 1927년에 지어진 옛 목동성당이다. 현재 ‘거룩한 말씀의 회’ 본원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축물은 대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목동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뾰족 종탑이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흰색 성당은 쪽빛 하늘과 알록달록 맵시를 뽐내는 싱그러운 나무, 풋풋한 잔디와 어울려 한 폭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대전 목동 사거리를 지나 충남여중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대성중ㆍ고등학교 가는 길로 들어서면 대전 중구 동서대로 1365번길 19에 있는 옛 목동성당을 만나게 된다.

목동성당은 대전 지역 첫 성당이다. 일제 강점기에 큰 도시로 성장하기 이전까지 대전 지역은 그리 주목받는 곳이 아니었다. 1919년이 돼서야 첫 본당인 ‘대전본당’이 설립된다. 이 대전본당이 1947년 대흥동본당을 분가하면서 ‘목동본당’이 됐다.

1971년 지금의 목동성당이 신축돼 옛 건축물이 된 목동성당은 제2대 대구교구장인 무세 주교가 설계, 감독해 1927년 완공했다. 198㎡ 크기의 작은 성당이지만 종탑과 출입구와 창문 외벽의 다양한 장식, 2열 기둥을 세워 세 부분으로 구분한 바실리카식 내부 공간, 프랑스와 독일에서 가져온 색유리화와 십자가의 길 부조, 마룻바닥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을 만큼 잘 정돈된 소박하고 정감 가는 예쁜 건축물이다. 원래 이 성당 벽체는 붉은 벽돌이었으나 6ㆍ25전쟁 때 생긴 총탄과 핏자국을 가리려고 1956년 시멘트로 덧바른 뒤 페인트로 칠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6ㆍ25전쟁까지 목동본당의 역사는 수난과 박해, 순교의 세월이었다. 3ㆍ1만세운동 당시 목동본당은 조선총독부에서 성당 건립을 위한 벌목을 허락하지 않아 난항을 겪었고, 우여곡절 끝에 성당을 완공하자 일본군 기마병이 말을 타고 성당 안으로 들어와 갖은 횡포를 부렸다. 서울대교구장 라리보 주교가 1937년 ‘작은 형제회’를 한국에 진출시켜 목동성당에 자리잡게 한 후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총독부 경찰은 적국인 캐나다인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을 체포해 해방 때까지 감금했다.

1950년 6ㆍ25전쟁이 터지자 대전을 점령한 인민군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목동성당과 작은 형제회 수도원을 강제 징발해 공산당 충남도당 정치보위부 본부와 수용소로 사용했다. 유엔군 공세에 밀려 전황이 불리해지자 인민군은 1950년 8월 중순부터 성당을 폐쇄하고 사제들을 체포해 목동성당과 수도원으로 이송했다. 인민군은 유엔군의 공습을 피하고자 폭격기가 오면 외국인 선교사들을 인간방패로 삼아 옷을 벗어 흔들게 했고, 수도원 지하실에서 언덕으로 굴을 파게 하는 강제 노역을 시켰다.

유엔군에 밀려 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되자 인민군은 9월 23~26일 성직자들을 비롯한 외국인과 주요 인사 700~2000여 명(증언자에 따라 숫자가 다름)을 목동성당과 수도원에서 학살했다. 이때 대전교구 소속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인 코르데스(당진 주임)ㆍ페랭(합덕 주임)ㆍ콜랭(서산 주임)ㆍ를뢰(온양 주임)ㆍ리샤르(예산 주임)ㆍ몰리마르(금사리 주임)ㆍ폴리(천안 주임) 신부와 강만수(홍성 주임) 신부, 평신도 이항진(토마스) 등 9명과 광주교구 소속 골롬반 외방전교회 브렌난 몬시뇰(제4대 교구장), 쿠산(목포 주임)ㆍ오브리엔(목포 보좌) 신부 3명 등 12명이 목동성당에서 총살돼 순교했다. 또 목동성당에 갇혀있던 카다르(목동 수도원 및 성당 책임) 신부와 뷜토(공세리 주임) 신부는 중강진 하창리 수용소까지 ‘죽음의 행진’을 한 후 그곳에서 순교했다.

이들 외 수많은 외국인과 주요 인사들이 목동 언덕에서 총과 죽창 등으로 학살되고 18m 깊이의 수도원 우물에 던져져 생매장됐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학살됐는지 1952년 4월 5일 목동 언덕 인근에 3곳의 임시 화장터를 마련, 시신을 발굴해 열흘간 화장을 했을 정도였다. 화장된 유골은 목동성당 뒤편 용두산 지사총에 안장됐다가 1986년 6월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으로 이장됐다.

대전교구는 교구 설정 60주년을 기념해 2008년 6월 충남 전의 교구 성직자 묘역에 ‘6ㆍ25전쟁 순교 기념비’를 세웠다. 또 목동본당 신자들은 2000년 대희년 부활 대축일 때 ‘성직자 순교사’를 증언하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465232_1_0_image_1.jpg
▲ 목동성당 ‘성직자 순교사’ 안내문

이글을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