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삶의 원천_고미카엘 신부

풍요로운 삶의 원천_고미카엘 신부

글  고미카엘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 출생으로 1965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도착하였다.
광주대교구 함평·목포 산정동·노안·장흥·광주 호남동, 제주교구 한림, 안동교구 영주 휴천동, 원주교구 제천 소부동에서
본당사목을 하였다. 이후, 호주·뉴질랜드 지부장을 역임하였고 파키스탄에서 선교하였다.
현재는 뉴질랜드에서 요양원 지도 신부와 선교 연구 활동을 하며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다

1965년에 서품을 받고, 한국으로 발령받았을 당시 저는 인생 경험이 아직 많지 않은 때였습니다. 해외 선교를 할 수 있는, 기본 수련을 갓 끝낸 일반의사와 같은 상태였지요. 한국으로 파견되면 한국어뿐 아니라, 풍요로운 문화와 종교 유산을 바탕으로 한 지혜를 지닌 한국 사람들에게서 배울 것이 많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처지이든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겠다. 나는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며 나눌 것이다. 그런 다음, 때가 되면 하던 일을 넘겨주고 다른 곳으로 건너갈 것이다.” 뉴질랜드를 떠나 한국으로 향하면서 저는 이 짧은 문구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책임은 신부를 기다리는 본당으로 가서 사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7년 간 펼쳐진 수많은 축복은 선교사제로서 저의 만년을 풍요롭게 지탱해 주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故 김수환 추기경께서 저에게 어느 상황에서든 선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여야 한다고 겸손 가득한 음성으로 조언해 주셨습니다. 또, 안동교구장이었던 두봉 주교께서는 하느님의 존재를 엿볼 수 있는 징표들을 일상 속에서 계속 찾아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원주교구 故 지학순 주교께서는 가톨릭교회가 오늘날 사회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북돋워 주셨습니다.

경상북도 영주에서 사목할 때 고 미카엘 신부, 본당 식복사 자매, 맨 왼쪽은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1970년대 중후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서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문화를 배운 다음에는 본당 신부로 파견되었습니다. 광주대교구, 안동교구, 그리고 원주교구에서 저를 환대하며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설령 그곳이 시골 외딴 마을이라도 가서 사람들을 동반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화적, 영적, 언어적 영역에 들어가면 신성한 경이로움과 존경심이 들 것이라는 확신이 저를 그곳을 향해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제 막연한 젊은이 특유의 이상주의는 그 신성한 만남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함께 희망과 기쁨, 그리고 상실과 슬픔을 나누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제 주위에는 언제나 마음 넓은 지도자들이 있어 제가 성체성사를 행하거나, 이웃들을 찾아갈 때마다 저와 함께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도전 받고, 고심할 때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더 넓고 종합적인 세계관이 저의 기도와 강론에 점점 더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더 이상 개인의 사명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출발해 사람들의 가슴에 함께 도달하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을 떠난 후 저는 정의 평화와 생태를 위한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런 목표에 가톨릭교회가 더욱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사는 한국인들과 함께하였고,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세계와 만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오테아로아(뉴질랜드를 뜻하는 마오리어)에서 마오리족의 영성을 공부하였고, 오세아니아 지부의 행정과 사제들을 위한 피정 지도 등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사람들이 제 이력의 배경과 다문화적 시각의 원천이 어디인지를 물을 때면 저는 일찍이 한국에서 보냈던 시간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흐릿해지는 먼 옛날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주변이 조용해질 때면 옛날 사진들을 꺼내 놓고 제게 환대를 베풀고 공감해 주고, 동행해 준 이들과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제 만년의 방향을 만들어 주었고, 제 안에 선교 정신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감사를 담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에서 고 미카엘 신부

『골롬반선교』 2021년 봄호(통권 제118호) 24~25쪽

By |2021-04-26T10:21:07+09:002021-04-26|골롬반 소식|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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