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크리스마스

2012-01-04T11:30:10+09:00

작성자: 이경자등록일: 2012-01-04 11:30:08  조회 수: ‘5783’

곽후신 실비아 _ 평신도 선교사

(여름에 맞는 성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발파라이소(Valparaíso)에 도착합니다. 커다란 항구와 멋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30개가 넘는 언덕들 중 ‘기쁨의 언덕’이 있는데, 계곡에 칠레 야자수가 가득한 ‘라스팔마스’(Las Palmas)와 호수가 있는 ‘라라구나’(La Laguna)가 바로 제가 지난 3년 동안 살던 동네입니다.
올 여름에 본국으로 휴가를 나와서 다시 11월에 칠레로 돌아가지만, 또 저를 맞을 계절은 여름입니다. 칠레에서 세 번의 성탄을 보냈는데, 결코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우리나라와 정반대인 여름이라는 계절 때문입니다. 오히려 날씨가 쌀쌀해지는 7~8월에 캐럴송을 흥얼거리며 눈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작년 12월, 아기 예수님 맞이 9일 기도 기간 동안 신부님들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구유를 축복하였습니다. 저와 평소에 공소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아주머니들, 복사 어린이들이 봉사자로 나섰습니다. 음정도, 박자도 안 맞는 노래를 20여 분씩 불러가며 여덟 가구 정도 돌았더니 다리가 아팠습니다. 하지만 너무 감사해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덕분에 기쁨을 한 아름 선물 받은 것같이 기분 좋은 체험이었습니다. 구유와 집을 축복하기 전에 그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이마에 먼저 성수로 십자가를 그으며 축복해 주시는 모습과, 마지막에 가족들에게 자유로이 지향을 물어 기도할 수 있도록 초대해 주시는 신부님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만들었다는 맛있는 과자와 빵을 내어놓아 입도 즐거웠고, 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음식을 챙겨주기도 해서 칠레 사람들의 따뜻한 나눔의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정방문)
보통 주일 미사 때 가정방문을 신청한 집들과 길에서 우리들을 보고 가정방문을 원하는 집을 방문하였는데, 오랫동안 사회복지 분과(매달 설탕․소금․차․쌀․국수․스프 등 생필품을 마련해 동네의 어려운 이웃들을 방문하는 활동을 함)에서 함께 일한 아주머니와 저는 바실리오 할아버지와 율리아 할머니의 집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려 신부님을 안내했습니다. 마치 우리 집인 양 대문을 자신 있게 두드리며 “알로” 하고 소리쳤습니다. 문이 열리고 나오는 낯선 얼굴들에 ‘아, …이제 그분들은 안 계시지…’라는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마음을 추스른 뒤 방문 목적을 밝히고 나서 구유와 집을 축복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우리들을 집 안으로 반겨주셨습니다. 시작기도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눈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새롭게 페인트칠한 벽, 새로운 가구들의 다른 배치,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낯선 얼굴들, …하지만 너무 어색하게도 케케묵은 우리 할머니․할아버지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밀려오는 그리움과 슬픔을 넘어 이 새로운 가족들이 우리 할머니․할아버지의 공간을, 추억을 빼앗은 것만 같아 싫었고 분노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운 냄새)
일 년 전 성탄절에 91세의 바실리오 할아버지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공소에서 마련하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위한 ‘온세’(오후 5~8시쯤 먹는 간단한 저녁. 주로 홍차와 빵에 쨈, 햄, 치즈를 곁들임)에 언제나 양복 상의에 손수건을 꽂고 참석하셨고, 독립 기념일에는 멋지게 춤도 추시던 할아버지는 성가정 공소의 마스코트였습니다. 저는 매달 방문 일정 때 외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공소에 들러서 할머니․할아버지들과 함께 온세를 먹고, TV를 보기도 하는 등 말동무가 되어드렸습니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부인이라고 오해했는데, 사실은 할아버지의 여동생입니다. 87세의 율리아 할머니는 저에게 뜨개질하는 법도 알려주시며 매주 목도리 뜨는 진도가 얼마나 나갔는지 확인하시곤 하셨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침대에 누워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할아버지 냄새에 곰팡이 냄새까지 더해진 작은 방에서, 할아버지 옆에서 함께 기도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것이 저에게는 참 편안한 안식이었습니다.

(두 분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며…)
할아버지께서 꼼짝도 못 하시고 침대에서만 누워 계신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율리아 할머니께서 먼저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신부님과 우리 공동체는 두 분을 돌보느라 병원과 집을 오가며 정신없이 바쁘고 슬픈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많이 위독하셨던 할머니께서 조금 회복되어 퇴원하시자, 기다리셨다는 듯이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며칠 만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칠레에서 처음으로 친한 친구를 잃는 경험이었기에 너무 슬펐습니다. 공소에 모셔진 할아버지는 곱게 화장을 하고, 양복을 입으시고, 언제나처럼 가슴 주머니에는 손수건을 꽂고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할머니는 언제나 검정 옷을 입고 계셨는데, 저와 함께 방문한 신부님께서는 할머니도 얼마 남지 않으셨으니 마음 준비를 해두라고 저에게 조용히 일러주셨습니다. 언제나 함께하셨던 두 분이었는데, 할머니 혼자 계시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 우리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날,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움, 그리고 또다시 칠레로…)
할아버지께서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성인들의 상본으로 가득 찬 작은 기도 책은 지금 저에게 소중한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으로 휴가를 나온 후 칠레의 많은 후원회원님들과 동네 할머니들, 그리고 저를 잘 모르시는 본당의 신자 분들까지 저를 위해 정말 많은 기도를 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힘들고 외로웠을 때, 집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던 날, 문밖으로 박차고 나가 사람들을 만날 힘을 얻은 것은 모두 그분들 기도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기도하고 계셨던 바실리오 할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제 저는 네 번째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칠레에서 보낼 것입니다. 또 다른 칠레 사람들과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며….

***곽후신 실비아 선교사는 지난  11월에 다시 칠레로 돌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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