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나눔] 선교사는 기도하는 사람들

2012-08-23T17:23:31+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2-08-23 17:23:23  조회 수: ‘5467’

****** 아래의 글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열어가는 「화해와 나눔」 2012년 여름호에 실린 글 입니다. ****** 

 

선교사는 기도하는 사람들 

 

양창우(요셉) 신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영성은 자신의 고향과 문화를 떠나서 그리스도의 기쁜소식을 나누는 선교의 여정에 녹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초창기의 선교회에서 강조한 부분은 개인 성화이다. 즉 나 자신이 먼저 복음화가 되고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성화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도생활이 중요하다. 기도는 우리를 불러주시고 선교사의 삶에 초대해 주신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이고 그분과의 일치된 관상적 삶으로의 축복된 부르심이다. 많은 골롬반회 선배 선교사님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언제나 성무일도와 미사를 성실히 봉헌하시고 묵상을 하며 살아가는 신부님들의 모습을 통하여 선교사의 삶이란 바로 이러한 곳에서 에너지를 얻고 정체성을 발견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타향에서 살아야 하는 선교사에게는 외롭고 고독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자신의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기에 고향이 그리워지고, 친구들이 보고 싶고 가족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면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외로움은 또 다른 하느님을 향한 초대라고 느낀다. 선교사로서 타문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혼자서 겪는 외로움은 바로 하느님을 찾고 갈망하는 그 여유로운 공간으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르심에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깊이 갖는다면 그 외로움과 고독함은 생명을 창조해 내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귀하고 소중한 기회가 된다. 한 선교사 신부님은 오랜 세월을 선교지에서 보내시고 마지막에는 병마의 고통과 싸워야 했다. 그 병마와의 싸움은 무척이나 외롭고 힘든 여정이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때 그는 늘 경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며 하느님께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내맡기며 용기있게 그 길을 걸어가고 계셨다. 그러한 아픔 가운데에서도 하느님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평상시에 사제로서 성실히 기도생활을 해왔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분을 만났던 것만으로도 나의 선교사의 삶에는 큰 축복이었다. 선교사는 역시 기도로서 살아가는, 활동하는 관상가임에 틀림이 없다. 

 

기도하는 선교사는 주님과 함께 침묵 속에서 머물며, 주님을 홀로 독대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만남을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체험하게 된다. 필리핀 아구산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선교활동을 하던 중, 일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에 찾아오는 외로움들이 있었다. 하루종일 본당의 미사와 세례 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날 저녁부터 월요일 저녁까지는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다보면 함께 활동하는 다른 신부님들은 본부에 가서 영어권에서 나오는 영화도 보고 같은 언어권의 동료들과 함께 농담도 하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나에게는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사제들이 없었다. 그래서 때로는 홀로 본당을 지키며 머물러 있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때 성체 앞에서 주님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러고 나면 주변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와서 함께 기쁘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들이 있다. 이것은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고, 은총이며 축복이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기도하는 선교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살아가셨던 예수님을 본받아서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투신하는 삶을 통하여 드러난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복음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자유롭게 선교를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중국 정부의 제재를 받고 있기에 복음 전파라는 측면에서 소외받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곳에서 선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중국에서 선교사들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중국을 위하여 기도하고, 아파하는 중국교회와 함께 아파하며, 고난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자기헌신적 삶 자체가 살아 있는 기도이며 행동하는 관상가의 모습을 체험하게 한다. 이 삶은 참으로 외롭고, 많은 인내와 사랑을 요구한다. 이 요구에 기꺼이 자신의 모든 삶을 투신하는 것이기에 바로 기도하는 선교사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의 가장 열악한 지역의 쓰레기 처리장 부근에서 사목하는 프랑스 선교사 한 분을 만났다. 언제나 활짝 웃으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늘 기도하며 그들의 공동체를 인도하는 그분에게서 나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보았다. 사제관은 정말 아주 소박했다. 책상 하나와 침대가 전부인 그 분의 삶은 너무나 단순한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은 무엇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분의 모습에서도 선교사는 기도하는 관상가라는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도는 영적독서를 통하여 더욱 풍요로워지는데, 영적독서야말로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선교사로서 해외에 살다보면 한국에서 생활할 때보다 영적독서와 신학적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특히 필리핀의 오지나 중국의 어느 시골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는 많은 선교사들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모습의 하느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체험하기가 어려울 수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 안에서는 다양한 영적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면 더 깊이 성장할 수 있다. 영적독서를 하면서 마음이 더욱더 풍요로워지며, 쉼의 여유도 갖고, 생각의 폭도 넓어지고 본인이 현재에 겪고 있는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천상의 지혜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순간에 하느님의 사랑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만나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독서를 꾸준히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선교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의식성찰의 습관을 길들이기를 권장하고 싶다. 의식성찰은 곧 매일매일 생활 안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를 의식하고 깨닫고 감사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의식성찰을 매일매일 실천하다보면 무너져가는 자존감도 더욱 높아지며, 하느님께서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인도를 하시며 함께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매일매일 하느님을 향하여 머물다보면 선교사의 삶은 곧 기도의 삶임을 깨닫게 되고, 그 기도의 삶을 통하여 선교활동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더 능동적이고 생기 있게 실천할 수 있게 된다.
북한 선교를 준비하는 선교사들도 이런 영적 삶이 바탕이 될 때,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대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방법으로 선교할 수 있는 천상의 지혜를 받게 될 것이며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특히 선교활동이 때로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실패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험도 하게 된다. 하지만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고 투신한 선교사의 삶은 인간의 눈으로는 실패로 보여도 하느님께서 맺으시는 그 열매는 분명 풍성하게 맺을 것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수확이 없더라도 넓고 긴 안목으로 선교활동을 바라보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창우(요셉) 신부 :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이며, 현재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성소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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