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나눔] 선교사는 하느님의 벗이자 세상의 벗

2012-10-26T09:15:21+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2-10-26 09:15:03  조회 수: ‘5681’

****** 아래의 글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열어가는 「화해와 나눔」 2012년 가을호에 실린 글 입니다. ****** 

 

선교사는 하느님의 벗이자 세상의 벗 

 

양창우(요셉) 신부 

 

선교사로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스스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즉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에 따라 우리가 하는 선교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것은 곳 선교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태도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선교사로서의 태도는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내가 만난 많은 선교사들은 공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제는 너희를 종이 아니라 벗이라 부르겠다.’라는 말씀을 가슴에 담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을 선교사의 여정에 함께하시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동반자, 즉 선교사들의 벗으로 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오시고 부르시는 하느님을 알고 깨닫는 사람들이 곧 선교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어떻게 하느님을 벗으로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살아보면 알게 된다.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오지에서 모든 신자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 누구와도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오직 하느님하고만 함께하는 시간에 하느님께서는 선교사의 외로움과 걱정, 이해되지 않는 문화와 답답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무로서 함께 하신다. 그리고 갑자기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 때 도움을 청하면 내밀어주시는 그분의 손길은 항상 옆에서 도와주며 함께하시는 친구로 다가오신다20121026.jpg .
나는 필리핀 민다나오 가가얀디오로의 아구산 본당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자주 공소방문을 했다. 지역 내의 공소만도 20개가 넘었는데 그 중에는 산속 깊은 곳까지 차를 몰거나 혹은 걸어서 가야만 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본당에 있는 차는 20년이 넘은 낡디 낡은 지프차로 고장이 수시로 났으며 냄새도 심했지만 예산과 여러 가지 문제로 바꾸지 못한 상태였다. 그 지프차만이 유일하게 산속의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어느 날 그 차를 몰고 산속을 한참 달리던 중이었다. 길이 험해 울퉁불퉁한 돌들로 차가 많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차 앞 범퍼에서 연기가 나고 불이 나기 시작했다. 난 너무 놀라 차를 세우고 신발을 벗어서 범퍼를 두드리며 불을 끄는데 마음에서 큰 두려움이 밀려왔다. 깊은 산속에,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생겨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혹시 불 때문에 차가 터질 까봐 걱정이 되어 불을 끄다 말고 차를 버려둔 채 멀리서 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소 미사시간은 다가오고 도움을 청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나는 ‘주님, 도와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도움을 청했다. 이때 동네 아이들이 소를 몰고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갑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산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나타난 아이들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다른 산골로 가던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열에 아홉이 천주교 신자라서 내가 본당 보좌신부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무슨 문제냐고 물어보는 아이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지역주민에게 상황설명을 했다. 그러자 이들은 ‘신부님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며 자신들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고치는 사람이 올 때까지 차를 지키고 있겠다고 했고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은 나를 공소에 데려다 주고 다시 시내로 내려가서 기술자를 태우고 와서 차를 고쳐놓겠다고 했다. 이들의 도움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하느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공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감사하게도 신자들은 생각지도 않게 늦은 나를 환영해 주고 기다려 주셨다. 그리고 미사가 마쳤을 때 차는 수리된 상태로 공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은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함께하셨던 하느님의 사랑과 우정을 깊이 체험하는 은혜로운 경험이었다. 나를 도와주었던 동네 아이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주민은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보호와 따뜻함을 드러내며 아주 가까운 친구로 다가와준 천사들이었다. 나는 이러한 경험들을 수백 번 넘게 해 왔다. 내가 도움을 주고 기쁨을 나누어야 하는 선교지 사람들로부터 환대와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친구로서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이들의 사랑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깊이깊이 남아서 벗으로 다가오시며 동무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했고, 나이와 인종을 넘어서 따뜻한 친구로서 다가와준 이들은 내가 선교지 사람들에게 친구로서 다가갈 수 있다는 마음의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 

 

선교사는 무엇인가를 주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교사는 이미 그곳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깨달으며 그분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하고 드러내느냐를 중요한 과제로 보야야 한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타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타 문화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존중하기 위해 가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동등한 인격체로서 친구라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선교지 사람들이 친구로 다가오는 우리를 받아들일 것이고 선교사도 그들의 귀한 친구로 오래 기억해줄 것이며 그 만남을 통하여 친구이자 벗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북한 선교를 준비하는 선교사들에게도 이러한 영성이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환경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 같은 언어지만 표현도 다르고, 경험과 생각도 다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뜻한 정과 사랑을 담아 ‘벗’으로 다가간다면 친구와의 깊은 신뢰 안에서 벗으로 다가오시고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연민 그리고 자비하심을 깊이 체험하게 될 것이다. 선교지 주민들이 신음과 고통의 소리를 듣고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느끼며 이 험난한 세상 안에서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교사와 선교지의 주민들 모두는 살아가고자 하는 용기와 힘을 얻으리라 믿는다. 

 

양창우(요셉) 신부 :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이며, 현재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성소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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