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선교지이야기 나눔

2009-07-17T15:47:52+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7-17 15:47:24  조회 수: ‘6371’

 

12월 선교지이야기는 지난 9일 저녁 7시 30분에 변함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동유럽 알바니아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2년간 일하신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신명순(에스텔) 수녀님께서 이야기를 이끌어주셨어요.

첫 장에서는 알바니아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해주셨어요.
알바니아의 수도는 티라나이고, 면적은 한반도의 1/8, 인구는 350만(2004년통계)이며, 우리나라와 같이 4계절 있는 국가입니다. 인구의 95%가 순수 알바니아인이고, 언어는 토스크 방언을 사용하고 제2외국어로는 이탈리아어, 영어가 있습니다. 천주교는 전체인구의 10%정도이고, 수도를 중심으로 북쪽 지역에 천주교의 90%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선교를 나가게 된 계기는
1999년에 영국에서 파견된 수도회 알바니아 공동체 수녀님들의 편지였다고 해요.
그래서 선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수녀님께서 원해서 요청하여 선교를 나가게 되었답니다.

알바니아에서 수녀님이 계셨던 곳은 콘차(korca)였는데, 이 곳은 산악지대로 70년도의 초반 모습이였고, 종교는 대부분 이슬람이였다고 해요.
그 곳의 천주교는 어른이 10명정도, 나머지는 모두 아이들이었다고 합니다.

수녀님은 더 늦기전에 좋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처음 시작부터 삐걱되었어요.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리고, 찾기 힘들다고 하면서, 말도 통하지 않고… 결국 어렵게 짐을 찾긴 했다고 합니다. 알바니아에서 문화충격을 겪게 되었는데요… 첫번째는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은 복장으로 돌아다녀서 수도자가 많은 줄로 오해한 일이었고요, 두번째는 자동차 종류가 모두 벤츠였다는 것이고 또 그것이 훔친 차였다는 것이지요. 세번째는 양귀비 꽃이 지천으로 깔려있다는 것이었다고 해요.

선교를 나가기 전에 교육을 받으면서 2년만 선교를 나가게 되면 아픔만 겪고 두 번다시 가고 싶지 않을 것이고, 좀 더 오래해야 선교의 기쁨과 보람을 느껴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는 말씀을 들으셨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답니다. 1997년 금융피라미드 사건이후로 알바니아 사람들은 외국인을 믿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거부감과 적대감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웠고 사회체제가 바뀌어가는 과도기였기에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외에는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바니아 사람들은 종교와 관계없이 하느님에 대해서 생활과 밀접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모든 일에 대해 하느님만이 아신다고 믿고 있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에스텔 수녀님이 생각하시는 선교는 개종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랑하심을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알바니아의 한 남자는 먼곳에서 온 사람이 자신의 부인을 돌봐주는 것을 보고 하느님은 사랑이 진정으로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하느님을 다른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그것이 에스텔 수녀님께서 생각하시는 선교라고 하셨어요.

또 에스텔 수녀님의 선교 나눔은 선교를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시간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2005년 1월에 준비된 선교지 이야기는 13일(목)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합니다. 을유년을 여는 달에 골롬반 선교센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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