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하반기 이현주목사의 수요특강] 3회, 4회 강의요약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7-21 11:48:14  조회 수: ‘6124’

 

♧ 9월21일(수) 강의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의식혁명>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power와 force의 힘.

반대하거나 거스르는 등, 부정할 때의 힘을 어두운 힘, force 라 하고
찬성하고 위하고 긍정적하는 밝은 힘을 power라 한다.

이 두 힘은 항상 인류의 역사를 끌어왔다. 인위적인 어떤 것이 들어있지 않은 힘, 하느님의 힘 power를 인위적인 힘 force가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인도의 간디의 무폭력 power에 대한 영국의 힘 force의 예를 들 수 있다.

하느님의 힘과 자신이 원하는 힘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force는 power를 이길 수 없으므로 하느님의 힘에 어떻게 부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산다면 power에 따라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A가 B를 미워할 때, A가 B를 미워하는 만큼 A는 약해지고 B는 강해진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힘에서라도 관심을 받게 된 누군가는 그만큼의 에너지를 받게 된다. 미워한다는 것은 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도 나도 강해진다.

그리고 반전운동도 마찬가지로 한편으로 전쟁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다.
마더 데레사는 ‘왜 베트남 반전운동에 동참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나는 anti war movement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pro-peace movement는 하겠다”
라고 대답했다.

예수님도 율법을 반대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분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을까?’ 를 생각하였지 누군가를 반대하고 배척하지는 않으셨다고 본다. power는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기운이 내안에 머무르면 내가 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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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28일(수) 강의

Situations do not make you, but reveal you.
나를 만드는 것은 상황이 아니며 내 의식의 차원이 나를 달라지게 한다.
즉, 의식 수준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을 때, 죽음을 앞에 두고도 다른 이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던 연주자들은 우리의 의식수준이 삶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여준다.

의식의 차원이 낮은 사람일수록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그 두려움으로 자기를 닫고, 폭력을 쓰게 된다.
반면, 의식의 차원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랑의 동기가 더 커지고 다른 사람의 거친 모습을 받아들인다.

의식수준 최고의 정점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자신을 십자가 위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할 수 있는 분이시기에…

善者吾善之  不善者善之  德善矣 (노자)
선한 이를 나는 선하게 대하지만 선하지 않은 사람도 선하게 대한다.
덕은 선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게 되어라’라는 예수님 말씀에는
‘나는 아직 하느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와
‘나는 하느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라는 두 가지 서술문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하느님처럼 되고자 한다면, 그런 생각을 깊게 하고 있다면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너는 수레고 생각은 그 수레를 끄는 말이다’(루미)
말이 수레를 끌고 간다. 그러나 주인이 말의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 번 세워놓은 생각(말)에 끌려 다닐 수도 있다. 누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그러므로 생각을 지배하라. 버릇처럼 생각하지 말고 잘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의 의식의 차원이 달라질수록 하느님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왔다.
구약에서의 두려운 하느님에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사랑의 하느님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나의 한 쪽 뺨을 때린 이를 쫓아가서 그의 뺨을 떼리라는 구약의 모세의 법과, 나의 다른 쪽 뺨마저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법 중 어느 것이 더 쉬운가. 끝까지 쫓아가는 데 드는 에너지보다 얼굴만 돌리는 데 드는 에너지가 덜 들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이 쉬운 길이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습관이 연속된 삶 때문이다. 보복해야하고 꿔준 것은 이자까지 해서 꼭 받아내야 하는 습관.
생각을 바꾸라.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다.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진리는 항상 단순하다’라고 말한다. 우주의 원리는 give and take, 주고 받는 것이다. 먼저 줘라. 그러면 받는다. ‘호흡’은 먼저 내쉬고 나중에 들이 마시는 것이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대학)
사물에는 본과 말이 있다.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선과 후를 알면 즉, 도에 가까운 사람이다.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아는 것이 도에 가까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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