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하반기 이현주목사의 수요특강] 5회 강의요약

2009-07-21T13:17:34+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7-21 13:17:34  조회 수: ‘6061’

 

살면서 기쁘고 즐거움도 느끼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다. 어두울 땐 어두워야 한다.
어느 시골 동네, 콩밭 옆 길가에 어둠을 밝히려 켜져 있는 가로등을 매일 밤 꺼버리시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꺼진 가로등을 얼마간 다시 켜놓던 목사님은 할머니의 끊임없는 ‘가로등 끄기’에 뭔가 다른 뜻이 있을 것이란 짐작으로 켜는 일을 멈추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니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밭에 있는 콩들을 재우시기 위해서란다. 어두워야하는 밤에 가로등과 같은 불빛 아래 있는 콩들은 수확철이 되어도 알이 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식물도 어두워야 할 땐 어두워야 하는구나!

공부에는 머리공부와 몸공부가 있다. 머리공부는 우리들 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까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몸공부는 삶의 공부이고 체험이다.

티벳에 이런 말이 있다: 내일이 먼저 올런지 내 생이 먼저 올런지…
내가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머리로만이 아니라 죽음을 몸으로 느낄 때는 삶이 달라진다.

사렙다 마을의 과부(열왕기상 16,8-24)의 이야기에서…
기근이 들어 굶어죽어 가는 마을에 한 과부와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은 한 방울의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먹기 위해 땔감을 하러 간다. 이런 상황에 이 여인에게 지나가던 나그네가 물을 청하고, 거기다 떡(식량)까지 청한다. 나그네는 그 여인에게 청을 하고 난 후 하느님의 축복을 이야기한다. 자신에게도 이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마지막 빵을 준비하려는 그 여인은 나그네의 청을 들어준다. 자기에게 턱없이 모자란 양식을 타인에게 나눠 준다는 것. 그 여인처럼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삶에 대한 집착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노자가 말하기를  益生曰祥(익생왈상), 살려고 애를 써는 것 그게 바로 재앙이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셰익스피어)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다.
철학가는 이것을 문제로 삼아 살아가나, 성인(聖人)들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not question.(앤소니 드 멜로 신부)

사람의 몸은 파동으로 되어있다. 파동은 에너지다.
사람의 의식이 높아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일수록 고주파로 1초에 2만번 파동이 있고, 의식이 낮아 폭력적이고 두려움에 찬 사람은 1초에 2천번 이하의 파동을 가진다.
의식이 낮은 사람이 높은 의식의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가 없다.
결국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이의 에너지를 폭력으로는 깨뜨릴 수가 없는 것이다.

분노의 감정이 있을 때는 나쁜 에너지가 나오므로, 자신보다 더 약한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쁜 에너지가 약한 이들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더 좋은 에너지를 가진 이에게 가라. 좋은 에너지를 받으면 내 몸의 파동이 고주파로 되고 다른 좋지 않은 에너지가 나를 침범하지 못한다.

거룩한 성상에서도 에너지가 나온다.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세계, 영의 세계가 있다. WHO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이제는 인간의 건강을 말할 때, 몸과 맘의 건강 그리고 영의 건강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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