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하반기 황종렬박사의 화요특강] 6회 강의요약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7-21 13:26:38  조회 수: ‘6060’

 

* 아래 내용은 10월 11일(화) ‘평신도란 누구인가’ 강좌 6회의 요약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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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와 교회구조

understanding은 밑에 서는 것을 말한다. 머리로가 아니라 발로 이해한다는 말이다. 아래에 선다는 것은 너를 너로 살게 하는 것, 너를 너가 갈 곳으로 건너게 하는 것, 이것이 understanding의 의미이다. 땅이야말로 우리를 잘 이해한다. 얼마나 잘 이해하면, 자기가 다쳐도 묵묵히 우리가 건너가게 하는가. 이 땅의 이해심, 저 understanding 능력을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땅의 영성, 땅의 이해를 사신 분이 그리스도이시지 않은가.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제자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땅의 이해심. 밑에 서는 것. 밟히는 것. 아래로 내려서는 것. 그래서 건너게 하는 것.

* 점-원-구-큐빅

점: 일체형 대 지배 중심의 타존재의 존재 거부
면으로서 원: 상하 협력형 대 위계적 지배 종속
구: 근원 중심 교류형 대 총체적 지배
큐빅: 통합적 상호 교류형 대 분열과 교란과 갈등

두 입체형은 앞의 단선, 평면형을 모두 포용하고 있다.

* 큐빅 구성 방향과 교회 구성원들의 역할 관계

큐빅 구성 방향

신분

현재역할

역할 교환 가능성 정도

바닥

평신도

기층·토대층

높이

성직계

주도층

측면

수도계

협력층

* 교구와 본당에서 사제와 수도자와 신자

1. 낮으면서 성장이 부족했던 단계를 지나면서,
2. 커 가면서 토대층 있어도 힘을 실어 주지 않고 고고형이다 보니, 허리가 휘고, 기형적으로 교만을 키우고 영성이 일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을 볼 수 있다. 이때 토대층을 질식시키게 되고 그 결과 기층이 높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3. 수도계는 여자 수도회가 나름대로 활발하지만 비전 제시 역할이 빈곤함에 따라서 폭이 제약되어 있는 형태를 드러낸다. 이때 좁은 폭으로 인하여 성장과 토대를 모두 위축시키는 사태를 유발시킬 수 있다.

서로를 지탱해 줄 때 비로소 튼튼한 큐빅을 갖추게 될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는 하느님의 백성 교회 큐빅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1. 직무 직분의 고정 관습 재고: 직무의 순환은 불가능한가?
2. 사제와 평신도의 관계에서 교회 생활의 평신도 자활과 성직계의 신앙 전통 매개와 지도를 철저화할 방법 모색
3. 지도자 교육과 평신도의 신앙 감각, 곧 신앙 현장의 통합을 위한 총체적 방안 연구
4. 주교와 사제 직무에서 교도권과 통치권에 대한 성숙한 인식의 정착을 위한 제도적, 사목적 틀의 확보
5. 여성 신도의 정체성과 역할과 관련한 시대의 표징의 자각과 그 구현: 전족의 교회론적 의미
6. 존중과 저항의 영성 체현
1) 알 것을 알 게 하는 교회
2) 관습의 정당성을 질문할 영성
3) 전통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깊이
4) 전통에 근거한 비판력의 형성
5) 궁극적으로는 비판이 아니라 사랑이 바꾼다는 것에 대한 믿음과 확신
6) 소공동체-관리에서 살림으로:
신자 인력풀 조사: 현대식 상호 섬김을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 영성 안에서 구현
멘토Mentor-Mentee 실천: 원주교구 사회복지 청소년 사목팀과 미국 영어 교육 프로그램
7) 생태 복음화의 영성 비전과 공교육에 대한 통합적 이해

평신도에 대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교회 지도부의 일반적 입장이 어떠했는지는 다음 사례에서 볼 수 있다.
1839년 벨기에 주재 교황대사가 교황청에 보낸 서신 가운데 평신도 사도직에 관하여 이렇게 우려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불행히도 모든 이가 사도직에 불렸다고 믿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홍순, “평신도의 교회 생활 참여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63.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입장은
평신도는 성직자와 수도자와 함께 교회와 세상의 복음화 사명을 구현하는 데 공동 책임을 지고 서로 보완할 존재라고 보았다. 이들이 교회이다.

* 전족의 사목적 의미를 살펴본다.
중국 역사에서 전족 풍습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널리 유행하였다. 당시 이 악습은 동서남북을 불문하고 어느 지역에서나 존재하고 빈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에 퍼져있었다. 발을 꽉 졸라매어 힘줄이 오그라들고 뼈가 부러지는 기형의 전족은 ‘3치 금련’으로 미화되어 사람들의 폭 넓은 찬사를 받게 되었다. 남성들은 그것에 완전히 매료당하고 온 세상이 분별력을 상실하여 결국 추악하기 짝이 없는 전족은 여성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3치 금련이 아닌 여인은 여성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전족의 의미를 되씹어 보면서 평신도의 자기 상실만이 아니라 성직계 지도자들의 몸에 베어 버린 권위주의적인 군림의 현실이 오늘날 평신도와 교회구조의 비극적인 사례로 남아있음을 본다.

* 수강자들과 함께 ‘우리 교회 안에서 우선시 되어야하는 과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 평신도 영성의 부재와 의식의 낮은 수준을 들어올리는 것이 교회가 외적으로 커지는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 사제관의 문턱이 높고, 본당 성직, 수도자와의 만남이 없다. 또한 본당사목도 사회적 관심사에 부흥하듯 부유하고 힘있는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듯하여 안타깝다.
–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때, 성직자나 수도자만이 소명을 받았고 평신도는 그들보다는 하느님과 멀리 있는 이들이라는 의식을 바꿔야 한다.
– 유교적 사회 바탕이 교회제도 역시 상하구조로 자리잡게 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성직, 수도, 평신도가 함께 일하는 프로그램들은 이 변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 성직자나 수도자. 평신도 역시 자기 이름만을 지키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남아있으면 그것을 텃세라 하고, 그 직분의 소명대로 살려고 한다면 자릿세라고 할 수 있겠다.
– 신학교의 폐쇄성
–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기대기
– 평신도들이 자기 신앙에 주체적이어야 한다. 신앙을 키워나가기 위해 찾아나서는 자세가 필요.
– 본당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사제관. 수녀원이 본당 밖으로 나와야 한다.

* 평신도와 교회 구조의 쇄신 문제를 설립목적과 활동 방향의 하나로 잡고 있는 우리신학연구소 박영대 소장을 초대하였다. 앞으로의 과제로 인식하는 것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기본 원칙 한 가지에 대하여 박영대 소장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당장 연구소로는 새로운 젊은 신학자들을 발굴, 양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약간의 기금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연구소 설립 당시부터 생각했던 평신도 양성 전문 기관과 영성 수련 센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신학연구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적당한 때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모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예수쟁이가 그래야 하듯이 예수처럼 생각하고 예수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되도록 간편하지만 깊은 삶을 살려고 하지만 그리 살지 못하는 것을 늘 반성합니다.’

By |2009-07-21T13:26:22+09:002009-07-21|선교센터 게시판|[2005년 하반기 황종렬박사의 화요특강] 6회 강의요약의 댓글을 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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