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상반기 수요강좌] 그리스도인의 삶과 영성 1회

2009-07-22T11:07:17+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7-22 11:07:02  조회 수: ‘5986’

 

* 아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영성 첫번째 강의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보시는 분들에게 영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숨과 몸의 영성

1. 하느님 모습 그리움

사람은 곧게 서서 하늘의 숨을 쉬며 하늘을 우러르고 하늘을 이고 사는 존재다.
하늘은 무한과 절대와 초월을 나타내며 하느님의 형상,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은 막힘없이 하나로 뚫리고 통해 있다. 하늘은 두루 뚫림, 회통의 자리다.
몸과 마음의 곧음과 하늘의 두루 뚫림, 회통이 결합된다.
“몸은 스스로 낫는다.”며 몸 살림을 말하는 김철에 따르면
몸이 곧으면 기가 회통되어 저절로 스스로 건강해진다.
산 꼭대기는 하늘과 만나는 자리인데 곧음과 두루 뚫림이 결합된다.
산은 한국인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였다.

 

하늘을 향한 그리움으로 솟아올랐네
구름 위로 솟아오른 후에야
하늘 높은 줄 다시 알았네

머리에 찬 바람 불고
흰눈이 쌓이고 얼음이 얼어도
꿈쩍하지 않는 것은
하늘 그리움이 더욱 깊고
하늘은 까맣게 높기 때문일세.

하늘을 생각할수록
마음은 낮아져서 뿌리는 깊어졌네
하늘이 내려와
빈 가슴에 안겼네
누구나 맞아 주는 품이 열렸네

나 안에 너(하느님) 있다.
하느님 안에 나 있다.
내 안에 아무 것도 없으면 허무하고 그리워!
그리워하는 이가 사람이다.
저밖에 모르고 물질욕과 본능에 휘둘려서
그리움 모르면 사람 아니다.
하느님의 형상, 모습대로 인간을 지으셨다.
인간의 코에 하느님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다.
창조자 하느님, 형상–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찾는 끄트머리.
물질에 몸에 갇혀서 하느님 그리워함이 신앙이다.
“하느님 안에서 내 영혼은 비로소 안식을 얻나이다.” (어거스틴)

2. 선악과와 모름지기 (‘마땅히’ 라는 뜻으로, 모름을 지킬 때만 ‘마땅히’를 지킬 수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동산 가운데 두고 이 열매만은 먹지 말라 하셨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은 신적인 것, 공적인 것이다. 가운데 두고 보고 지킬 것이지 사유화하고 독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따먹고 독점함으로써 타락하게 되었다. 갈등과 분열, 미움과 분노, 전쟁과 살육이 일어났다. 모든 분열과 갈라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자기 기준과 지식, 관념으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한다. 모든 시비와 갈등이 여기서 나온다. 불신앙과 불복종이 여기서 나온다.
예수님과 바리사이파 비교; 예수님은 시비판단을 넘어서 사랑의 실천과 사귐으로 가고 바리사이파는 시비하고 비판하고 정죄한다. 율법지식을 가지고 시비하고 비판하고 정죄한다.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다.
숭산스님의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
‘안다’고 할 때 알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없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없다.” 나의 앎을 비울 때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알 수 있다.

3. 숨과 몸의 영성

숨은 밖을 향한 그리움, 살려는 의지, 삶을 향한 의욕. 숨 쉬는 동안 희망 있다.
숨은 온 몸을 하나로 통하게 한다. 숨은 나의 몸으로 하늘과 땅을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회통이다. 몸과 맘이 막히면 숨이 막힌다. 거꾸로 숨이 막히면 몸과 맘이 편치 않다.
몸과 맘이 곧아야 숨이 깊게 잘 쉬어지고 힘이 난다.
몸 살림, “몸은 스스로 낫는다.” (김철) 곧음과 회통 (유영모)
곧음과 회통; 곧아야 하느님께로 가고 믿음과 사랑의 힘이 솟는다. 곧아야 두루 하나로 통한다. 장생법, 양생법의 비결은 몸과 맘을 곧게 함이다. 하느님께 나아가면 곧게 되고 하나로 된다. 하느님 앞에서만 곧음과 두루 통함이 된다. 영육 간에 건강해진다.

밥, 흙으로 흙을 빚기
“도(道)란 코로 숨쉬고 흙으로 흙을 빚는 것이다.”
사람은 흙에서 나왔다. 먹거리 역시 흙에서 시작된다. 흙에서 나온 먹거리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사람이다.

숨으로 드리는 기도,
날숨은 나를 비우고 버리고 죽임이고, 들숨은 채우고 세우고 살림이다.
“척주는 율려(律呂), 거믄고” (유영모)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그 분을 찾아가는 것이 사람의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곧게 세우고 조율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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