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상반기 수요영성] 창조(생태)영성 3회 강좌요약

2009-07-21T16:03:20+09:00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7-21 16:03:24  조회 수: ‘6050’

 

* 아래는 창조영성의 세번째 강의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보시는 분들에게 영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주를 연구할 때 우리는 우주가 세 개의 기본 원칙, 혹은 법칙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것은 개성, 내면성, 그리고 통교성이다. 자연의 이 세 가지 원칙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어서 지구상에서 쉽게 관찰되어 질 수 있다.

개성
모든 것들은 자기 외의 모든 다른 것들과 다르다.
수십 억 개의 별들이 있지만, 이 별들은 각기 서로 다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와 같은 차이는 우주의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르다는 것은 괜찮은 것, 즉 서로 다름은 하느님의 의도하는, 바라는 것으로 우리가 모두 알게 되면 전쟁, 편견, 인종차별 등과 같은 사태들은 사라지게 될 것인가?

내면성
모든 종교는 내면성과, 독특한 구조와, 반복될 수 없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원주민들은 사냥할 동물이나 베어 넘길 나무 자신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허락을 구했다.

통교성
자연을 바라보면 상호작용의 그물  망은 모 든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주의 모든 현실은 우주의 모든 다른 현실과 친밀하게 공존하고 있으며, 상호공존을 통해서 자신의 충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진화과정 전체는 친교성에 의존해있다. 각 존재들이 자신의 외부에서 찾게 되는 이것이 성취되지 않고는 세상 전체에 아무 것도 발생할 수가 없다. 구성물질도, 분자도, 생명도, 의식도 일어날 수 없다. (지구의 꿈. p.106)
모든 벌레, 새, 동물, 물고기, 식물들은 자기 외의 다른 각자의 존재와 평화를 위한 협동작업에 완전히 연루되어 있다. 인간은 이 총체적인 생명 공동체로부터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영적으로 깨달은 날은 내가 하느님 안의 모든 것과 모든 것에 있는 하느님을 본 날이며, 나는 이것을 본 것을 안다. (마게부르거의 매히틸드의 ‘꽃피는 천주의 빛’)

이 법칙들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는 예수의 계율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을 모든 창조물들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기본적 단일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아 관념을 지구와 우주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모든 창조물들은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느님에 대한 서적이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지구는 펼쳐지고 있는 우주의 표현이고, 우주와 하나 됨을 이루고 있다. 우리 인간 역시 지구와 우주가 펼치고 있는 표현이며, 우주 그리고 지구와 하나 됨을 이루고 있다. 신학자 칼 라너는 영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물질의 직관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물질은 “자신의 내적 존재로부터 영(靈)적 방향으로” 개발해 나간다는 것이다. (예수와 우주, p.26에서 발췌). 칼 라너는 인간 개인은 우주가 의식 속에 들어오면서 이해되어 질 수 있다고 암시했다. 인간을 통해 지구는 자신을 고찰해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기원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것은 지구 그 자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지구가 스스로 계속 재생을 거듭하고, 스스로 영양을 공급하고 치유할 수 있게 되려면, 우리는 지구가 살아있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지구를 계속 착취하고, 파헤치고, 채굴하고, 재구성하고, 재가공하고, 소비하고, 허비할 목적물로 취급한다는 것은 지구학살 행위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 개발 방식에 있다. 우리 문화가 우리가 만든 모든 창조성과 발명들의 근원이긴 하지만, 이것은 또한 우리의 이탈감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생활방식은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엄청나게 오인하도록 이끌었다. 자연은 이런 관념과 그 관념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에 의해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 은총을 통해 계속되고 있는 인간 영혼의 변화는 그 기초적인 자아의 회복과 크게 연계되어 있다.

우리가 취득한 새로운 사실들은 현재의 우리 시각, 믿음, 가정, 가치관, 윤리, 그리고 인간이 만든 기관, 직업, 프로그램, 그리고 활동 등을 모두 재평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통찰력이 어떻게 인간, 지구상의 모든 존재, 그리고 지구 그 자체와 건강한 관계를 조장하게 되는가?’ 하고 질문해야 한다.
덧붙여, 우리가 신생대 마지막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의 만발하는 지구가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대를 뒤로하고 떠나는 것은 결코 미미한 손실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가장 화려한 꽃들과, 식물과, 새들과, 물고기와, 동물들의 놀라운 아름다움 속에서 환희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종의 다양성이 감소해 감에 따라, 우리 창조주의 장엄함, 웅장함에 대한 우리의 이해 또한 감소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조물들을 통해 창조주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서 1장 19-20절 참조) 지구는 계속 발전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심오한 계시다. 모든 하느님의 창조물들은 이 계시과정의 구성부분들이다. 모든 것들은 필요한 것이다.

말씀은 태초의 불덩어리가 발생했을 때 창조적인 아버지와 감돌고 있는 성령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은 최초의 영원한 신성한 공동체로, 다른 이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고, 우주의 신성한 친교를 가져다주었다.

예수는 보다 확대된 공동체를 이끌어내어, 모든 사람들은 그 차별성에 관계없이 존중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가 교회 안에서의 예수의 삶과 유산으로부터 진행되어 가면서, ‘이웃’에 대한 이해도 모든 사람들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주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면서 우리는 공기, 토양, 강, 수풀, 새, 동물들 등 모든 것들은 깊고 신비한 존재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독특한 존재성은  각각 하느님의 고안을 나타내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모든 창조물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구는 하나의 단일한 신성한 공동체다.

미래는 인간의 이득만을 위해 자원으로서의 지구를 점점 더 착취하는 기술시대(technozoic)에 매달리는 사람들과, 전체 지구 공동체의 안녕이 가장 주요한 관심사가 되는 인간-지구간 관계의 새로운 형태인 생태시대(ecozoic)에 매달리는 사람들 간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어떻게든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브라이언 스윔과 토마스 베리. 우주 이야기. p.15)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는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복음 17장 20-21절.)

이글을 SNS로 공유하기!

Go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