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Fiji – 지구 반대편에서 고향을 만나다

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7-22 14:46:18  조회 수: ‘6588’

 

* 아래글은 경향잡지 2006년 10월호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 김동말님은 올여름 피지선교체험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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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특별한 것을 원하면서고 도무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뭔가 지금 나에게 돌파구가 필요한 거야.’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주최한 7박 9일의 이번 평신도 피지 선교현장 체험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글 김동말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지 13년. 한동안 나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큰 잘못 저지르지 않았기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순조롭게 사는 것도 그냥 내가 잘(?) 살기 때문이라는 자만에 빠져있었다.
날마다 가던 성당도, 묵주기도도, 성체조배도, 누군가를 만나면 하느님 이야기를 하고 싶던 열망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직장 일도 시들하고 취미생활도 별로이고 뭔가 특별한 것을 원하면서도 도무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뭔가 지금 나에게 돌파구가 필요한 거야.’
그러던 어느 주일, 무엇이든 읽기 좋아하는 내 눈에 주보의 ‘피지 선교체험단 모집’ 이라는 활자가 들어왔다. 그 순간, 2002년 겨울 홀로 이집트를 여행하다 길을 잃고 헤맬 때 어디선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나를 도와준 피지인 두 분의 친절함이 생각났다. 결국 망설임 없이 선교체험단에 합류하여 6월 말 피지행 비행기를 탔다.

짧은 하룻밤, 길고 깊은 사랑
결론부터 말하면, 7박 9일의 이번 선교체험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자신의 집을 통째로 내어주신 필리핀 이민자, 우리 일행을 위해 새벽잠을 포기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신 분, 사제관을 내어주신 신부님, 여든의 연세에도 우리를 위해 늦은 저녁까지 운전해 주신 신부님, 나발라 마을에서 우리 일행을 1일 가족으로 맞아준 현지 주민들.
나발라에서 내가 묵은 집은 30대 초반의 어머니 셀리타와 세 살 된 베드로와 잘생긴 아버지, 이렇게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베드로의 아버지는 집 주위의 은 채광장에서 저녁 늦게 돌아오곤 했다. 보통 늦게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진지하게 나의 말을 들어주었고 짧은 시간이나마 내가 있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정성을 다하고 있음이 눈에 보였다.
여분의 침대가 없다며 자신들의 잠자리를 나에게 내어주고 바닥에 누우신 그분들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침대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자는 나에게 한국처럼 구들이나 보일러가 설치 된 것도 아닌 맨바닥에 누워서 자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얇은 이불을 깔았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쉽게 잠들지 못했고, 이런저런 생각에 시계는 자정을 넘겼다.
새벽녘에 겨우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셀리타는 이국에서 온 손님의 아침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베드로의 손을 잡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있으니 먼 타국이 아니라 시골 내 고향에서 어린 조카 손을 잡고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산 아래 개울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영락없는 내 고향 풍경이었다.
넓게 펼쳐진 사탕수수밭을 보면서는 내 고향집에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옥수수가 생각났다.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어린 시절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져서, ‘나는 지금 피지에 온 것이 아니라 고향에 왔구나.’ 하는 생각 속에 시간이 흘러갔다.
체험단은 각자의 집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함께 미사에 참례했다. 신부님은 영어를, 현지인들은 피지어를, 그리고 우리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3개 국어 미사시간. 입당성가와 함께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피지인들이 부르는 애절한 성가는 우리의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했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분들이 보여주신 사랑과 환대는 우리를 눈물짓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나발라 마을에서 어린이들과 함께한 선교현장 체험단

이름 없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
셀리타의 집에서 저녁 한때를 보내는 동안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와 이야기하듯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나는 요즘까지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 하룻밤이 생각나 밤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내 것과 남의 것에 대한 구분이 지나칠 정도로 심해서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핀잔을 들으면서도, 이 습관을 버리지 못할뿐더러 그것이 그리 나쁜 습관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내 것에 대한 집착’이라는 단단한 껍데기에 갇힌 내 모습이 부끄러워 그 껍데기를 깨트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집을 생전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내어주고, 삶 전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를 1일 가족으로 맞아주신 그분들의 열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평소 성격이 급한 나는 잘 참지 못하고 특히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에게는 예민하리만치 신경질적이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혼자서 화를 참지 못해 속을 썩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피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미사시간이 되어도, 식사시간이 되어도, 버스 출발시간이 되어도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얼굴에 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느긋함과 여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진작 깨달았지만 쉽게 고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던 나에게 주님께서 이 ‘느긋함’을 선물로 주셨다. 열린 마음과 느긋함, 내가 하느님을 알고 그분 백성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필요한 온갖 선물을 주셨다.
또한 성찰할 때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부드럽게 지적해 주시고, 삶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바꾸어 주셨다. 이번 선교체험을 통해 선교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신의 변화임을 깨닫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요즈음 나는 생활에 여유를 찾고, 사람 사는 향기를 이웃에 전하고자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열린 마음, 다름의 조화, 나를 변화시키려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또한 생활이 신앙이고 신앙이 생활인 이웃들의 모습에 눈뜨면서 나의 가치관을 조금씩 바꾸려 한다.
피지인들의 삶을 보면서 선교는 거창한 구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피지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선교사는 늘 웃는 얼굴이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가 받은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세계가 하나인 지금 나도 이름 없는 선교사가 되어 누군가에게 내가 만난 그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하느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당신 품에 안아주심에 감사드리며, 나도 누군가를 지켜주고 품 안에 안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참신앙인이 되고 싶다.
By |2009-07-22T14:46:13+09:002009-07-22|선교센터 게시판|[2006년] Fiji – 지구 반대편에서 고향을 만나다의 댓글을 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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