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제들

[3·1절 특집]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제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 2019.03.03 발행 [1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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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리스도인이 삶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곳엔 성직자들도 있었다.황해도 은율본당 주임 윤예원(토마스, 1886~1969) 신부는 신자들에게 독립 의식을 강조하고, 상해 임시정부에 보낼 자금을 모았다. 안중근(토마스)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준 것으로 알려진 빌렘 신부는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한국 독립 청원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비록 교회 지도자들이 항일운동을 금지했지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러 방식으로 독립을 외친 것이다. 이처럼 민족의 아픔을 함께 이겨내기 위해 희생했던 성직자들을 소개한다.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다 총상 입은 안학만 신부

 

▲ 안학만 신부

 

안학만(루카, 1889~1944) 신부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제다. 압고지본당에서 사목했던 안 신부는 1929년 일부 신자들의 모함으로 성무 집행을 정지당했다. 이를 부당하다고 여긴 안 신부는 1930년 라리보 주교에게 인사를 하고 서울 떠났다. 안 신부는 서울을 떠난 후부터 1937년까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총상을 입고 귀국해 사목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뮈텔 주교 일기 1931년 4월 8일 자에는 안 신부가 총상을 입고 죽음 직전까지 간 위급한 상황이 적혀 있다. “백(남희) 베드로 신부로부터, 안 루카 신부가 위독해 그가 종부성사를 청한다고 말하는 전보가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일본군에 쫓기는 주민들을 성당에 피신시킨 공베르 신부

 

▲ 공베르 신부

프랑스 출신 공베르(A. Gombert, 한국명 공안국) 신부는 3ㆍ1 운동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만세 운동에 동참한 주민들에게 여러 도움을 줬다. 경기도 안성에서 사목하던 공베르 신부는 지역 유지가 찾아와 운동 방법에 관해 자문을 구하면 적절한 답을 해주기도 했다. 당시 “낮에는 국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밤에는 등불을 들고 만세를 외치라”는 공베르 신부의 조언 덕분에 안성에서는 밤이 되면 등불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또 공베르 신부는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만세 운동을 당부했다. 조선 사람들이 되레 화를 입을 것을 염려해 “일본인을 죽이지 말라”며 “일본인을 하나라도 죽이면 당신네는 수백 명이 죽을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공베르 신부는 심지어 일본군들에게 쫓기는 주민들을 성당에 피신시켰다. 성당이 사람들로 가득 차자 공 신부는 프랑스 국기를 성당에 걸어 치외법권을 주장하며 주민들을 보호했다. 또 만세 운동을 하다 총에 맞은 사람들을 직접 치료했다.

항일운동하다 옥살이 한 벽안의 사제들

▲ 도슨 신부
▲ 스위니 신부
▲ 라이언 신부

1941년 12월 제주도에서 아일랜드 출신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항일운동을 하다 신자들과 함께 체포됐다. 패트린 도슨(손, 1905~1989)과 오스틴 스위니(서, 1909~1980), 토마스 라이언(나, 1907~1971) 신부였다.

선교사들은 성당 등지에서 사목하며 신자들에게 항일의식을 심어줬다. 특히 일본군 배치 상황을 설명하거나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등 주민들이 독립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경찰에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의 죄목은 유언비어 유포와 천황 모독, 전쟁 비협조 등이었다. 결국, 선교사들은 실형을 선고받아 2~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국가보훈처는 1999년 이들의 공을 인정해 도슨 신부에게 애국장을, 스위니 신부와 라이언 신부에게는 애족장을 수여했다.

백슬기 기자 jdarc@cpbc.co.kr

사진제공=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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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T14:20:52+09:002019/03/14|골롬반 소식, 보도자료|